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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0월 19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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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이 17일 남미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2)를 구금한 것은 반인류범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최근의 국제사회의 조류를 반영한 것이다. 영국은 전범 테러범 대량학살범 등 반인류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애쓰는 미국 등 선진국의 정책을 배경삼아 외교관 면책특권을 무시했다는 비난과 칠레와의 분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를 구금했다.
칠레정부는 18일 외무부소속 변호사인 산티아고 베나다바를 특사로 런던에 급파해 “주권국가인 칠레의 외교관 면책특권을 존중해 피노체트를 석방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의 독재자 및 테러범 처벌〓최근 반인류범죄로 단죄중인 경우는 보스니아 인종학살에 가담한 전범들로 헤이그 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프랑스에서는 올 봄 2차대전의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와 모리스 파퐁을 반인류죄로 재판정에 세웠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양민학살을 주도한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 포트는 자신을 국제재판에 회부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시달리다 올 4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또 미국과 영국은 88년 발생한 팬암기 폭파사건의 용의자인 2명의 리비아인을 제삼국에서 열리는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리비아에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는 등 10년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독일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구소련으로 탈출한 에리히 호네커 전동독총리를 불러 법정에 세웠다가 보석으로 석방했었다.
▼피노체트의 운명〓피노체트의 신병을 넘겨받으려면 스페인은 체포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신병인도요청을 해야 한다. 물론 신병을 넘겨받으면 스페인 사법당국은 그를 재판정에 세워 △양민학살 △테러 △고문 등의 범죄로 처벌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국내의 복잡한 절차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신병인도에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신병인도요청은 영국법원의 1차 심사를 거쳐 내무장관이 최종심사한다. 그러나 피노체트측에서 이의제기를 할 경우 고등법원과 상원의 판정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피노체트의 영국체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피노체트 구금에 대한 반응〓피노체트의 체포를 의뢰한 스페인의 언론은 “그를 체포한 것은 정의의 승리이며 다른 독재자들에 대한 경고”라고 반겼다.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독재자들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유럽이 파렴치한 독재자들의 피신처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 열린 이베로―미주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스페인 방문길에 나선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대통령은 “외교관 면책특권을 침해한 일”이라며 영국을 비난했다. 영국 야당인 보수당도 “오만한 영국정부가 의회를 경멸한다”며 영국정부의 ‘경솔한 체포명령’을 비난했다.
칠레 국내에서는 반응이 엇갈려 영국과 스페인대사관에 몰려가 돌과 계란을 던지며 구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피노체트의 체포는 당연한 일”이라며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윤희상기자〉he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