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노벨평화상 오르테가 『자유-인권없는 성장 무의미』

  • 입력 1998년 8월 24일 09시 48분


《9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인권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테가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제주에서 열린‘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의 특별연설가로 초청된 그는 22일 본보기자와 단독회견을 가졌다.

그는 “한국경제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개발독재’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데 이는 도덕적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IMF를 통해 한국인들이 얻어야 할 교훈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바탕을 두지 않는 경제성장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단독회견 요지.》

―일제침략과 동족간의 전쟁, 군사독재의 와중에서 인권탄압을 겪었던 한국, 특히 4·3사태에서 많은 양민이 희생된 제주를 처음 방문한 소감은….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에서도 나는 한국민들이 독재정권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항거해온 데 대해 경의를 표했었다. 한국민들은 전직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내면서까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다수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제주사건의 진상도 반드시 밝혀졌으면 한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는데….

“독재자 수하르토 일족과 합작으로 기아자동차가 ‘티모르’란 이름의 자동차를 생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티모르인을 모욕하는 행위다. 티모르인 80만명중 20만명이 인도네시아의 군대에 의해 학살당했다.”

―인구 2억명의 인도네시아가 그토록 동티모르에 집착하는 이유는….

“모든 군사독재정권은 야만적인 군사력을 통해 소수를 희생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헛된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려 한다. 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점령한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제 수하르토 독재자가 물러나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75년 5백년간의 포르투갈 식민지통치가 끝나고 인도네시아 군대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일시 자치정부에서 외무부장관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언론인이 된 것도 사회적 문제에 관해 기사를 쓰고 싶어서였다. 정치가로 변신한 것은 동포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한다는 의무 때문이었다. 동티모르의 문제가 해결되고 저널리즘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꿈이다.”

―언론, 언론인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독재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객관성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일이다. 부패와 독재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중립을 가장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만일 한국의 언론이 과거 중립을 이유로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론인이 공무원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경제적 이해 때문에 경제대국들이 동티모르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지지 않을 것 아닌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은 물론 독재정권하의 한국도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지지했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축출되고 인도네시아 경제가 붕괴되면서 그들은 포기하고 있으며 동티모르의 독립가능성은 밝다.”

―한국에도 ‘개발독재’에 대한 찬양의 소리가 있다. 인권은 과연 절대적 가치인가.

“한마디로 바보같은 생각들이다. 독재는 일시적으로 경제성장을 만들어낼수 있다. 히틀러나 50,60년대 소련이 그랬다. 하지만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독재하의 경제성장은 외형적인 것일 뿐 자유와 인권이 없는 경제는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그는 “남북한이 조만간 진지한 대화를 통해 냉전체제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분단상태를 극복하고 통일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제주〓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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