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도 일단 대외적으로는 ‘강한 자세’를, 내부적으로는 ‘감정적 대응자제’를 지침으로 내려놓고 있다. 청와대도 “외교통상부의 입장이 정부 입장”이라며 추이를 지켜보는 자세다.
박장관의 이같은 지침에 따라 선준영(宣晙英)외교통상부차관은 6일 수히닌 대리대사를 외통부로 불러 “러시아 외교관명단에 정식 등록된 한국외교관을 연방보안국(FSB)이 연행해 2시간이나 억류한 것은 외교관 신분에 관한 빈협약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그러나 수히닌 대리대사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본국에 설명하겠다. 유감이다. 이번 일이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처럼 말로는 러시아정부를 몰아붙였지만 조참사관이 과연 불법행위를 했는지, 하지 않았다면 외교관례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지 않은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 것인지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조참사관이 7일 귀국하는대로 진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겠지만 5일로 예정됐던 시수예프 부총리의 방한(訪韓)계획이 무기연기된 데 이어 아파나시에브 주한 러시아대사까지 휴가차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간 상황이라 정부의 ‘갑갑함’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90년 한―러수교에도 불구하고 이후 양국관계가 소원(疏遠)한 것처럼 보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우리한테 한마디 사전 통고도 없이 이렇게 나올 때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러시아정부의 ‘의도적 도발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 4자회담에서 소외되어 온 러시아의 서운한 감정이 이번 사건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일단 1차조사 결과 조참사관이 러시아 외무부 한국과의 모이세예프 부국장을 만난 것은 시수예프부총리가 두차례나 방한계획을 연기한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믿고 있다.
이같은 조사결과가 사실로 판명될 경우 △러시아정부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이인호(李仁浩)주러대사를 일시 소환하는 방안 △주한 러시아 공관원을 맞추방하는 방안 등의 대응책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반도 주변 4강(强)외교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과연 정부가 공관원 맞추방 같은 위험부담이 많은 강경책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