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사태]공포에 질린 화교들, 자카르타 탈출 러시

  • 입력 1998년 5월 14일 19시 27분


수하르토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인도네시아 대학생과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계속된 14일 자카르타시내는 주요도로가 진압군에 의해 거의 봉쇄됐다.

일부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서 화교소유 상점과 자동차에 방화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등 대(對)화교 폭동양상을 보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쳉카렝거리와 시내 서부지역 그로골거리 곳곳의 상점과 차량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간간이 총소리가 들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전날 화교소유 상점이 불타면서 10여명이 숨진 소식이 전해져서인지 이날 겁에 질린 화교들은 가재도구를 버려둔 채 공항과 항구로 몰려들었다.

화교들은 싱가포르와 가까운 휴양섬 바탐으로 가기 위해 항구를 향했으나 이날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가 모두 봉쇄된데다 택시들이 화교에 대한 승차를 거부해 곤란을 겪었다.

한 공항 관계자는 “싱가포르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의 예약이 끝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여행객에 대한 안부를 묻는 세계 각지의 전화가 폭주해 전화가 불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젬마탄 리마지역 등 자카르타의 4개 차이나타운에서는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이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철시한 상점의 문을 부수고 난입, 불을 지르고 물건을 약탈했다.

현지 TV는 일부 폭도들이 옷가지 가전제품 등을 마구 약탈, 오토바이로 나르는 모습과 주유소에서 기름을 빼내는 모습 등을 반복해 방영했다.

인도네시아 보안군은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포탄을 발사했으나 성난 시위대의 약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M16소총과 진압복으로 무장한 수백명의 보안군과 해병대는 북부 자카르타의 코타거리와 대통령궁을 잇는 주요간선도로인 가드자 마다 거리를 완전히 봉쇄했으며 대통령궁 주변지역도 중무장한 진압군이 완전 차단했다.

이날 코타거리에서 수십명의 고교생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궁으로 접근하려 하자 시민들이 박수로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화교는 전체인구의 5%인 1천여만명에 불과하지만 경제력의 80%를 장악, 그동안 소요사태가 있을 때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분풀이 대상이 돼 왔다.

이날 자카르타시내 대부분의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회사와 은행은 철시했으며 셔터가 굳게 내려진 은행문에 간간이 돌을 던지는 시민들이 보였다.

<자카르타=김승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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