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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5월 10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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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냐. 열악한 한국의 노동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한국의 노동관행을 놓고 외국자본과 국내 노동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다.
“한국의 노동관행이 투자의 걸림돌”이라는 외국자본. 이에 대해 노동계는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한국의 특수성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관행 이해 못해〓외국자본측 주장은 “생산성에 관계없이 노동비용을 높이는 각종 규정과 관행이 너무 많다”는 게 요지.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달 ‘한미 무역투자 이슈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노동관행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보고서는 법정 퇴직금제도에 대해 “퇴직금 제도를 기업의 능력에 상관없이 시행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또 월차 및 연차유급 휴가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한국정부가 최근 법으로 규정한 정리해고에 대해서도 “아직도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며 법적 제한을 아예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조직대상의 51%를 넘어야 노조설립 허용 △해고효력을 다투는 자는 조합원 자격 박탈 △사업장내 쟁의행위의 금지 △파업기간 중 임시직 하청 근로자에 대한 대체근로 허용 △평균임금 통상임금 기본급 등 복잡한 임금체계의 단순화 등을 촉구했다.
주한일본기업인들의 모임인 서울저팬클럽(SJC)도 이달초 산업자원부에 보낸 ‘투자애로요인 및 건의’에서 비슷한 주장을 폈다.
▼한국적 상황 무시한 요구〓이에 대해 노동계는 “한국의 노사관계 근간을 뒤흔드는 요구”라고 반박한다.
박인상(朴仁相)노총위원장은 미국 상의의 보고서가 나온 직후 미대사관을 방문, 보스워스 대사에게 노동관련 조항의 철회를 촉구했다.
박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과연 미국내 기업에도 단결권 제한을 요구할 수 있는가”고 물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성명서를 발표,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주권침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조약에도 명시돼 있는 결사의 자유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면서 “이를 불허하라고 하는 것은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제기준과 한국적 특수성의 충돌〓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는 이같은 갈등에 대해 노동 전문가들은 한국적 관행과 국제적 보편성간의 마찰로 풀이한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노동관계법은 사실 정치논리에 좌우된 ‘주고받기식’이 많다”면서 “외국자본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최영기(崔榮起)위원은 “인도네시아와 한국만 실시하는 유급 생리휴가를 폐지하는 대신 이의 보완책으로 산전산후휴가를 서구 수준으로 늘리는 식으로 절충할 수 있다”며 “조금만 양보하면 얼마든지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