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주한日대사 『한국 묻히고싶다』 유언…13일 분골식

  • 입력 1997년 12월 12일 20시 17분


『내가 죽으면 뼈 일부를 한국에 묻어다오.저 세상에서도 한일 두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제2대 주한 일본대사(68∼72년)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지난달 1일 88세로 타계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의 유언대로 가족은 그의 뼈 일부를 한국에 옮기기로 합의, 13일 분골(分骨)식을 갖는다. 그는 일 후추(府中)시 가톨릭묘지와 한국 가톨릭묘지 두곳에 묻히게 됐다. 가나야마 전대사는 원래 유럽통으로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인물. 폴란드 대사로 임명된지 석달도 안된 68년 6월, 그는 갑자기 한국 부임 명령을 받았다. 한국 문외한인 자신이 왜 발탁됐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부임하면서 두나라 관계 발전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필두로 경제 건설에 매진할 때였다. 그는 본국에 한국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일관계 진전을 위해선 당당한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과거 우리가 잘못했던 일을 청산하기 위해서도 한국에 협력해야한다』 그가 박대통령 친서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총리에게 직접 전달하면서 포항제철 건립 지원을 호소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신일본제철 등은 『나사 하나 못만드는 나라가 제철회사를 세우겠다니 우습다』며 코방귀를 뀌었다. 그는 『일본이 제철회사를 만들때도 마찬가지였다.유럽 선진국이 일본을 비웃지 않았느냐』고 설득했다. 그는 또 서울지하철 건설에 숨은 공로자이기도 했다. 70년 3월 일본 적군파들이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가다가 김포공항에 착륙했을 때 그는 범인들에게 『나를 인질로 잡고 승객들을 풀어주라』고 말했을 정도로 책임감을 보였던 인물. 72년 2월 대사 임기가 끝나고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파리문화관장 자리를 받았으나 『여생을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사양했다. 그리고 도쿄한국문화원(당시 원장 최서면·崔書勉)을 찾아가 이사자리를 얻었다. 한국엔 그를 아는 사람이 무척 많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꽃한송이 제대로 전한 사람은 없었다. 〈도쿄〓윤상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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