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일본경제 침몰론」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해졌다. 「산업경쟁력 저하로 이대로 가다가는 주저앉는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특유의 방어본능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본경제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의 경제개혁은 정부의 「호송선단 방식」에 길들여진 기존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번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하시모토 6대 개혁」 가운데 △금융 △재정 △경제구조 등 경제분야가 절반을 차지하는 것도 이런 절박감을 반영한다.
개혁작업의 진행속도도 빠르다. 지난 5,6월에 외국환거래법 일본은행법 독점금지법 등 굵직한 경제관련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의 재정구조 개혁안과 은행 증권 보험 등 분야별 금융개혁안도 공개됐다.
경제개혁의 핵심은 「일본판 금융빅뱅」으로 불리는 금융개혁. 규제와 보호라는 온실에 안주해온 금융산업에 시장원리의 투명성과 국제성을 도입, 대대적인 수술을 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시장 총거래액이 뉴욕의 30%, 런던의 80%라는 사실에서 시사되는 「금융산업의 공동화(空洞化)우려」와 잇따른 금융비리, 막대한 부실채권이 금융개혁 필요성의 공감대를 넓혔다. 『도쿄 금융시장을 금세기안에 뉴욕과 런던에 버금가는 시장으로 키우겠다』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의 포부는 문제의 심각성과 표리관계에 있다.
올해부터 2001년까지 연차적으로 실시될 금융산업 분야별 개혁안은 「규제철폐」와 「경쟁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사간의 업무영역이 철폐되고 주식매매 수수료가 자유화된다. 또 증권업의 면허제가 등록제로 전환되고 은행의 회사채 발행도 허용된다.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일반 기업의 외환업무를 허용키로 한 것도 금융개혁의 일환이다.
일본정부는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서비스법을 제정하고 신설될 금융감독청을 통해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감독 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다.
한편 재정개혁은 만성적자의 재정구조를 건전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지난 6월 각료회의를 통과한 개혁안은 구체적인 세출삭감 수치목표를 설정, 예산을 대폭 감축한다는 계획에 따라 우선 내년도 공공사업비 규모를 올해보다 7% 줄이기로 했다. 또한 매년 방위예산을 삭감하고 정부개발원조(ODA)도 줄인다는 방침이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2차대전 패전 이후 금지된 지주회사 설립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하고 격변하는 사회에 걸맞은 신산업 창출을 서두르는 것은 경제구조개혁에 포함된다.
그러나 경제개혁작업이 당초 취지대로 순조롭게 실현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각종 인허가권과 행정지도를 바탕으로 업계를 좌지우지해온 대장성 통산성 등 정부부처의 입김이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장성으로부터의 금융정책분리에 실패한 행정개혁의 한계가 이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금융기관이나 기업들도 정부눈치 살피기나 정치권 및 총회꾼과의 유착, 동종 업계간 담합 등 구태를 탈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경〓권순활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