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사망]파파로치,『은밀장면 1컷이면 떼돈』추적

  • 입력 1997년 8월 31일 20시 06분


「세계의 연인」 다이애나는 결혼직후부터 사망할때까지 유명인들을 쫓아다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인 「파파라치(paparazzi)」에 시달렸다. 유명인사의 스캔들이 될만한 사진만 찾는 이들은 끝내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다이애나는 지난 81년 찰스 영국왕세자와의 결혼으로 언론의 추적을 받기 시작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16년간 거의 한시도 언론, 특히 이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다이애나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 언론이 따라다녔다. 다이애나는 최근 프랑스 르 몽드지와의 회견에서 언론에 대한 혐오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언론은 잔인하다. 결코 용서하는 법이 없으며 실수만을 쫓는다. 동기는 왜곡되고 모든 제스처는 비난받는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내 입장이라면 벌써 영국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 가운데서도 파파라치는 극악스럽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집요하게 다이애나를 추적했다. 그동안 수백명이나 되는 파파라치들이 다이애나를 따라다녔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의 마리오 브레나는 다이애나와 함께 이번에 숨진 도디 파예드(42)의 밀애장면을 찍은뒤 언론에 팔아 단번에 4억원을 벌었다. 93년 다이애나의 수영장면을 찍어 7백만프랑(약 10억5천만원)을 벌었던 파파라치는 당시 잠수함까지 동원했었다. 다이애나가 이혼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언론때문이다. 94년 승마교관이던 제임스 휴이트와의 스캔들을 다룬 「사랑에 빠진 왕세자비」라는 책이 출간되자 그는 당장 「부정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결국 다이애나는 95년11월 BBC방송에 출연, 휴이트와의 통정을 고백함으로써 여왕의 분노를 사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됐다. 언론은 물론 다이애나를 세계 최고 뉴스의 인물로 만드는데도 기여했다. 지난 1월과 8월 앙골라와 보스니아를 각각 방문, 대인지뢰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촉발하면서 「친선대사」로 각광받게 된 것도 언론때문이었다. 그는 언론과 더불어 살다 언론으로 인해 죽었다.〈런던〓이진녕특파원〉 ▼ 파파라치? ▼ 파파라치는 사진만 찍어 파는 전문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은밀한 장면 하나만 건져도 평생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경쟁은 스파이전을 방불케 한다. 이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엄청난 정보망을 갖고 있는 이들은 가명을 쓰고 고감도 망원렌즈는 물론 승용차 보트 심지어 헬기와 잠수함까지 동원, 「목표물」을 쫓는다. 이들의 탄생배경은 57년 모나코의 캐롤라인공주가 태어났을 때 모나코왕실이 공주의 활동을 촬영하는 것을 경매에 부치면서부터. 역설적이게도 캐롤라인공주의 은밀한 장면은 지금까지 최고가인 8백만프랑(약 12억원)에 팔렸다. 다이애나뿐만 아니라 찰스왕세자도 이들의 추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수영장면을 찍은 바르톨리니는 6백만프랑(약 9억원)을 벌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 파파라치는 미국인 필 레이미로 할리우드의 쓰레기통에 잠복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이제 파리로 옮아갔으며 선정보도의 극치는 언론의 금기를 깨고 프랑수아 미테랑 전프랑스대통령의 사생아 마자린을 공개한 것. 이제 다이애나의 사망으로 이들의 극악스런 활동과 선정보도가 비난의 대상에 올랐다.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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