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연극제 기념작 「리어왕」,韓-獨-日배우등 출연

  • 입력 1997년 8월 5일 20시 09분


『Si un hombre tuviese en sus talones…(중략)』 스페인어다. 「만일 사람 두뇌가 발 뒤꿈치에 있다면 동상에 걸릴 위험이 있지 않을까」의 뜻. 멕시코 광대의 이 말에 리어왕이 『그럴 수도 있을 테지』하고 대답하자 불가리아 광대가 톡 끼여든다. 『토가바 아라드바이 세 트보아트…(그렇다면 제발 마음 푹 놓으세요. 당신 지혜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 필요가 없을 테니까)』 여기에 독일광대와 일본광대가 각기 자기나라 말을 덧붙이면 「바벨탑 건설 현장」이 따로 없다.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방언은 방언이되 타고난 연극적 감각으로 서로 기막히게 알아듣는다는 것뿐. 오는 9월 제27차 국제극예술협회(ITI)세계총회와 세계연극제 개막을 앞두고 특별공연작 「리어왕」을 준비하고 있는 극단 유인촌레퍼토리 연습실. 유인촌 윤석화 등 우리 배우 8명과 미국 테네시대 소속배우 3명, 독일 바이마르국립극장배우 3명 등 6개국 18명이 김정옥씨(ITI세계본부회장)의 연출아래 모였다. 셰익스피어의 언어연극을 다국적 배우의 몸으로 해체,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정신을 전달하겠다는 의도에서다. ITI세계총회의 이름아래 제작되는 유일한 연극답다. 연출자 김씨는 『2년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제26회 ITI세계총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최되는 97년의 한국 총회를 기념,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세계적 연극제작을 결의했다』며 『「리어왕」을 통해 인간본질에 대한 근원적 풍자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대는 2천년전의 한반도와 만주 일본. 왕족 역할의 배우들은 우리 전통문양이 화려하게 살아있는 옷을 입는다. 북 창(唱) 씻김굿 등 한국적 요소로 리어왕의 비극을 진혼(鎭魂)한다. 우리 고유성과 세계성을 갖춘 「이율배반의 무대」다. 『셰익스피어가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우리처럼 만들었을 것』이라며 김씨는 자신만만하다. 이 다국적 연극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언어다. 서로 다른 언어가 전혀 연극이해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는 거꾸로 같은 언어라도 마음의 열고 닫기에 따라 얼마나 철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리어왕(유인촌 분)과 셋째딸(윤석화)을 보세요. 같은 말을 쓰면서도 의사소통이 안되지 않습니까. 「리어왕」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연극이 될 겁니다』 유인촌의 말이다. 3억원의 제작비를 조건없이 내놓은 그는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공연은 9월10일부터 6일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02―3444―0651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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