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랑시문학상, 최형일 시집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 선정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30일 16시 02분


최형일 시인
최형일 시인
동아일보사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3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최형일 시인(64)의 시집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2025년·파란)가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초혜, 이숭원, 고운기 시인은 “최종 후보작 5개 가운데 최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최 시인의 작품을 “매우 깊고 치밀한 시적 디자인 속에서 나온 시집”이라며 “일상의 무료한 전개에 혁신적으로 저항하는 의식의 세계를 짜놓았다”고 평했다. 이번 수상은 영랑시문학상 사상 처음 공모를 통해 수상작이 선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집의 모두(冒頭)에 실린 ‘시뮬라크르의 봄’ 연작 산문시는 시집 전체의 주제를 암시하는 작품이다. “언제인지, 언제부터인지 늘 같은 바다는 어디부터인지 읽고 간 문장인지, 기억나지 않는 부두에 삶을 켠다”는 구절이 시집 전반의 정서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소 현학적이고 작위적인 요소가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짧은 시들에서는 서정시로서의 안정감이 두드러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은 나를 덮친 강물이기에/나는 강으로 머물고/강물은 되돌릴 수 없음으로 흐르네”(시 ‘꽃’에서),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움푹 팬 바탕의 무늬를 담은/하얗고 뾰족한 몸의 기억이다”(시 ‘백색 항아리’에서) 등의 구절을 예로 들며 시적 완성도를 높이 샀다.

특히 표제시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는 시집의 정서를 집약한 작품으로 언급됐다.

“검은 돛배가 부두에 잠든다/리스본 바닷가 선술집 파두처럼/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던 화살처럼/기약도 없이 파도는 푸른 자락을 끌어/모래의 기억을 사막처럼 읽는다”(시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에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대해 “시인의 생애에서 모든 것은 ‘돌아오지 않던 화살’이었는지 모르고 ‘모래의 기억’만 남은 ‘사막’인지 모른다”며 “우리의 생애 또한 그러할지 모르며, 우리가 쓰고 읽는 시가 거기서부터 일어나게 하는 위안과 기적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수상 소식을 듣고 “한국 현대시의 모더니즘 문학을 연 영랑 시정신의 맥을 잇는 문학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다시 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한다”며 “접속돼 있으나 고립돼 있고, 정보는 넘치지만 의미는 결핍돼 있다. 새로운 합리성이 절실히 필요한 분기점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젊은 날 문학을 시작했다가 교직 생활로 쉬었지만 늘 목마름이 있었어요. 늦게 다시 대학원(추계예술대학원)에서 문학과 새로운 만남을 찾으려 했습니다. 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삶을 긍정하는 힘이며, 설명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언어예요.”

최 시인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충청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현재 경남 창원에 거주하고 있다. 충남대 공업교육대학 기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경남도교육청 산하 중고등학교에서 35년간 교직 생활(기술가정) 뒤 지난해 2월 퇴임했다. 1990년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나비의 꿈’(2002년), ‘아무도 울지 않는 시간이 열리는 나무’(2024년)를 펴냈다.

시상식은 다음 달 10일 오후 2시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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