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솜털처럼’ 펴낸 이해인 수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낸지 49년
그 시절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신앙 한길 애썼네, 고맙고 축하해”
이해인 수녀는 “첫 책을 낼 땐 이렇게 많이 알려진 작가가 될 거라곤 꿈도 안 꿨다. 민들레가 사방에 날아다니는 ‘유명세’ 탓에 마음 아프고 힘든 일도 있었다”며 “그래도 결국 민들레를 통해 수녀원에 온 수녀님들도 있다. 사람들에게 기쁨의 역할을 했구나, 역사적으로 상징이 됐구나 싶다”고 했다. 마음산책 제공 ⓒ최충식
최근 온라인에서 소소하게나마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제목은 ‘이해인 수녀님께 사인 요청하면 벌어지는 일’.
말 그대로 이해인 수녀(80)가 사인해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수녀는 필통에서 어른 주먹만 한 도장을 꺼내 ‘쾅’ 찍고, 색연필로 꽃 그려 넣고, 장미 스티커 꺼내 종이를 빈틈없이 꾸민다. 사인 하나에 5분이 걸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대신 사꾸(사인 꾸미기)”라는 댓글이 달렸다.
지난달 22일 산문집 ‘민들레 솜털처럼’(마음산책·사진)을 펴낸 이 수녀를 1일 전화로 만났다. “7년 만에 제주를 찾아 김기량성당에서 특강과 독자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명랑 수녀’답게 목소리부터 경쾌했다.
“우리 집안은 어머니, 언니가 나이 들어도 이렇게 목소리가 젊어요. 제가 수녀원에 안 왔으면 앵커가 됐을 거예요, 호호.”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지 벌써 49년. 신간은 인터뷰와 미공개 대담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이 수녀는 “50년 전 책은 민들레 영토, 이번엔 민들레 솜털”이라며 “가끔 거울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셌다. ‘어머, 내가 존재 자체로 진짜 민들레 솜털이 됐구나’ 그런 묵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민들레 영토 때는 ‘이 땅에서 내가 고독의 진주를 캐며 꽃으로 피어나야 되는데. 좁은 돌 틈에 피어나 민들레처럼 강인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결심을 갖고 글을 썼어요. 그 민들레 한 송이의 수녀가 50년 한길을 가서, ‘진짜 민들레 영토가 됐구나. 내가 한 송이 민들레로 솜털을 날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한 그는 수도 생활 60년이 준 선물은 “모든 사람이 다 정겹고, 처음 보는 이도 일가친척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수녀원 창고엔 1980년대 중반부터 모은 독자 편지가 수십만 통 쌓여 있다고 한다. 특히 교도소에서 온 편지는 대부분 직접 답한다.
“이감됐으면 교도관한테 물어서라도 답장해요. 가령 공주 감호소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갔다면, 옮긴 지역에 있는 독자한테 ‘크리스마스 때 나 대신 뭐라도 전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화제가 된 ‘사꾸’에 대해선 “사인 하나하나가 기도라 생각한다”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단 맘으로 정성껏 한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예쁜 스티커를 보내줘요. 일본 출장 다녀왔다며 보내주기도 하고. 제가 ‘스티커 부자’예요. 온갖 스티커가 다 있어요. 스티커, 색연필, 메모지는 항상 제 가방에 있어서 어딜 가도 들고 다녀요.”
50년 가까이 글을 써 온 ‘민들레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신앙 안에서 한길로 오느라 참 애썼다고 하고 싶네요. 마음 변해서 민들레 영토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독의 진주를 키워내고 시에 나오는 대로 살아보려 안간힘을 썼구나. 고맙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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