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연 ‘식치합시다 한의원’ 원장겨울만 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어린 시절 아랫목에서 먹던 굴전이 그렇다. 칼칼한 총각무와 함께 집어 먹던 그 따뜻한 한 접시가 굴맛을 처음 알게 해준 순간이었다. 이후 음식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다. 굴은 제철 별미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바다의 우유’라 불릴 만큼 영양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이다.
굴은 껍데기째 바위에 붙어 ‘석화’ 상태로 자란다. 사료나 항생제를 쓰지 않고 바닷속 플랑크톤만 먹기 때문에 양식이면서도 자연에 가깝다. 남해와 통영, 서해 일대는 물결이 잔잔해 굴이 자라기 좋고, 영양도 풍부해 외국에서는 2년은 길러야 하는 굴이 국내에서는 6∼7개월이면 제 모습을 갖춘다. 10월∼다음 해 4월이 제철이고, 그중 1월에 맛과 영양이 가장 좋다.
굴이 겨울철 기력 회복 음식으로 꼽히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굴은 아연, 아르기닌, 글리코겐이 풍부한데, 이 조합은 면역력과 스태미나 향상에 직접 관여한다. 특히 아연은 굴 100g에 약 90mg이나 들어 있다. 하루 권장량이 15mg이니 굴 몇 알이면 충분하다. 아연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합성과 정자 활동성에 중요한 미네랄이며, 성장기 어린이나 피부 재생이 필요한 여성에게도 좋은 영양소다. 아르기닌은 혈관을 부드럽게 확장해 피로를 줄이고, 글리코겐은 고갈되기 쉬운 체내 에너지를 빠르게 보충해준다. 여기에 타우린까지 풍부해 과로 및 음주 뒤 간 피로가 쌓였을 때도 좋다.
한의학에서는 굴 살을 ‘모려육’, 껍데기를 빻은 것을 ‘모려분’이라 하여 보혈·보음 약재로 쓴다. 빈혈, 월경 불순, 여성 호르몬 저하 증상에도 굴을 권하는 이유다. ‘동의보감’에서 굴은 “얼굴빛을 곱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단백질과 미네랄이 피부 탄력과 멜라닌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다만 굴은 성질이 차다. 평소 손발이 차고 속이 약한 사람, 소음인 체질은 생굴을 먹고 배탈이나 설사를 겪기 쉽다. 이런 경우에는 굴전, 굴밥, 굴국처럼 익혀 먹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생강이나 마늘을 곁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굴의 유일한 약점은 구토·설사·탈수를 부르는 노로바이러스다. 굴 내장에서 잘 증식하고 영하에도 살아남는다.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간단하다. 굴을 85도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노로바이러스는 완전히 사멸한다. 익혀 먹기만 하면 큰 걱정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생굴을 포기할 수 없다면 고르는 법이 중요하다. 마트에서 굴 봉지를 살 때 ‘가열 조리용’이란 표시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해당 해역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경우 붙는 의무 표기다. 표시가 있다면 무조건 익혀 먹어야 한다. 생굴을 먹으려면 표시가 없는 제품을 고르고, 소금물이나 무즙으로 부드럽게 흔들어 씻어내는 것이 안전하다. 무즙 속 성분은 식중독균 억제에 도움을 주고, 굴의 불순물을 쉽게 빼준다.
체질을 잘 살피고 안전수칙을 지킨다면 굴은 든든한 겨울 보약이다. 레몬즙을 떨어뜨린 우윳빛 생굴의 탱클함을 올겨울에도 건강하게 즐기길 바란다.
정세연 한의학 박사는 음식으로 치료하는 ‘식치합시다 정세연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유튜브 ‘정라레 채널’을 통해 각종 음식의 효능을 소개하고 있다. 11월 기준 채널 구독자 수는 약 111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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