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로 유출돼 이번에 경남 진주 호국사로 환수한 ‘독성도’는 1860년 제작됐고 크기는 세로 86㎝, 가로 59㎝ 규모로 아담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최현정 행정관은 “진주 호국사 ‘독성도’는 1860년, 매우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화기 일부가 훼손된 점을 제외하면 그림의 보존 상태는 매우 좋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진주 호국사 ‘독성도’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홀로 나반존자가 앉아 있다. 왼손에는 불자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털끝을 부드럽게 쓸고 있다. 특히 화면 가득한 존자 중심의 간략한 구도가 특징적인데 이는 초기 독성도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배경은 소나무만 간소하게 그려졌는데 마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가벼운 채색 역시 초기 독성도에서 보이는 모습이란 게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최현정 행정관의 설명이다.
후기 독성도에서는 화려한 채색과 함께 ‘독성의문’을 근거로 독성존자의 형상과 배경으로 소나무 꽃과 새, 물(폭포) 등이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독성도 화기를 살펴보면 화기 화단이 일부 절취돼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함풍 10년 즉 1860년에 독성도를 조성했으며 사찰명은 확인되지 않으나 진주 어느 곳의 대법당에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최 행정관은 “화기 하단에 진주, 진주성내 등의 단어로 추정할 때 호국사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호국사는 진주성안에 위치해 숙종때 호국사라는 이름을 받기전에는 ‘내성사’ ‘산성사’ 등으로 불려졌다.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이 독성도는 ‘호국사’에 봉안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독성도 증명은 활해 삼소스님으로 추정되며 금어는 앞글자 ‘성’자만 확인되는데 성규 혹은 성관 스님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재 전하는 독성도는 약 300여점정도 된다. 그러나 20세기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고 가장 오래된 독성도는 영주 안양원의 ‘금선대 독성도’로 1812년 조성됐다. 그다음으로는 1851년의 운문사 사리암 독성도, 1859년 보문사 운계암 독성도, 1862년 청암사 수도암 독성도 등이 이른 시기의 독성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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