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묶기, 가능할까”…지역의사제, 정착률·복무설계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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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사제 공청회…“법보다 수련·생활 설계가 먼저”
의료계 “초임 의사 파견만으론 공백 못 막아”…구조 재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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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사제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쟁점은 10년 의무복무의 수용 가능성과 지역 정착률을 확보할 수 있는지로, 제도 설계의 타당성과 실행 기반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별도 전형으로 뽑아 학비를 지급하고, 의사 면허를 딴 후에는 일정 기간 비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9월 의료 취약지 등에서 10년간 근무하고 이를 어기면 최대 1년간 의사 면허정지, 면허정지 3회 이상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날(17일) ‘지역의사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10년 복무 체계 △필수의료 수행 기반 △정착률 제고 전략 △생활 기반 마련 등이 주 쟁점으로 다뤄졌다.

“입시 때 이미 정해진 미래”…지역의사제 복무조건 공방 가열

지역의사제 논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은 10년 의무복무와 공보의 병역 산입 여부다.

의료계는 지역의사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의사의 경력, 전문성 경로는 사실상 입시 단계에서 고정되고, 이후 (10년의 주거지는) 특정 지역, 기관에 묶여 있는 셈”이라며 “이 구조는 직업 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역의사제는 개인이 선택한 진로인만큼, 문제가 없다는 논리도 있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역 주민 생명권 및 건강권 보호라는 공익의 무게는 개인이 자발적 선택과 명확한 반대급부를 전제로 감수하는 직업 수행의 자유에 대한 일부 제한보다 현저히 크다”며 “질병, 출산 등 부득이한 사유에 대한 유예와 면제 조항도 두고 있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지역의사제는) 강력한 인센티브와 함께 복무 조건과 수련 전문 과목 제한을 사전에 이미 인지했고 자발적으로 동의까지 했기에 평등원칙 위반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현재 지역의사제 추진안은 군 복무 기간을 산입하고 있지 않다”며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학생이 의사가 될 때까지 국방부와 협의해 이들의 군 복무 기간을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성근 가톨릭의대 외과 교수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보건복지위원회 지역의사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17/뉴스1
김성근 가톨릭의대 외과 교수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보건복지위원회 지역의사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17/뉴스1


정착률 높이려면 수련·생활·진료 3박자 갖춰야

지역의사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지역 의료기관이 필수의료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전문 수련이 가능한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감성근 가톨릭의대 외과 교수(대한의사협회 대변인)는 “일부 지역 병원은 응급수술이나 분만조차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며 “초임 의사를 단독 파견하는 방식으로는 지역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권역별 중증의료 플랫폼을 우선 구축하고, 이후 수련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계획만 있고 실행력은 미흡하다”며 “수련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배치만 강행하면 제도는 형식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방 국립대병원의 수련의 충원율은 50%를 밑돌고 있으며, 외과·소아과·흉부외과 등 필수과는 지원자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지역 내 수련 자체가 어렵고, 지역 출신 전공의들도 수도권으로 이탈하면서 필수의료 공백은 반복되고 있다.

정착률은 지역의사제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해외에서는 교육·수련·근무가 연계된 경우 정착률이 40~60%까지 높아진 사례가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생활환경 격차 △가족 동반 어려움 △경력 관리 한계 등으로 장기 근속 유인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김영수 경상국립대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착률은 제도 설계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며 “지역 기반 수련과 경력 개발, 필수과 협진체계 등 실질적인 전문성 유지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지자체가 주거비나 유치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전국 단위의 통합 정주 패키지는 없는 상태다. 의료계는 “수련·진료·생활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장기 근무는 불가능하다”며 “가족 생활, 연구·학회 활동까지 포함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무복무 기간, 정착률 제고 전략, 지역 수련 기반 등 쟁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세부 기준을 조율하기 위한 별도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 지방 수련병원장은 “법률 제정보다 현장에서 당장 적용 가능한 세부 설계가 더 중요하다”며 “전문가·지자체·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통해 수련·배치·정주 지원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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