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모습과 삶이 있어요. 정답은 하나가 아니고요. 아들 젠에게 책을 통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번역을 하게 됐습니다.”
방송인 사유리 씨(46)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 ‘달콤 짭짤 모두의 파스타’(도모리 시루코 지음·라곰스쿨)를 번역한 이유를 말했다. 그는 기증된 정자를 통해 2020년 아들 젠을 낳아 자발적 비혼모가 됐다. 그는 “학생 때 공부하는 걸 싫어했는데 (공부 같은) 번역을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아들을 키우려면 뭐든 다 해야 한다”며 웃었다.
동화 ‘달콤 짭짤 모두의 파스타’를 번역한 사유리 씨(왼쪽)와 아들 젠. 라곰스쿨 제공
에세이집을 여럿 낸 그가 번역에 나선 건 처음이다. 일본 동화 작가 도모리 시루코가 쓴 이 책은 길쭉한 롱파스타와 짧은 쇼트파스타가 사는 파스타 나라의 갈등을 그렸다. 생김새 때문에 롱파스타에게 오랫동안 놀림받아온 쇼트파스타가 공격에 나섰고 롱파스타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미리는 골목길에서 거대한 빨대 모양 통로로 빨려 들어가 파스타 나라에 가게 되고, 대립으로 폭발 직전인 현장을 보게 된다. 책은 올해 9월 출간된 후 한 달여 만에 재쇄를 찍었다.
사유리 씨와 최지연 라곰스쿨 대표(43)를 최근 전화 인터뷰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5월 책을 들여왔다. 최 대표는 “주인공 미리가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 거대한 모험을 하는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세계관이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내용을 익숙하게 여긴다”했다. 번역가로 사유리 씨만을 생각했다고 한다.
“사유리 씨는 홀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름을 다룬 책이어서 사유리 씨가 번역하면 책의 주제를 전하는데 더 힘을 가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9월 처음 번역 제안을 했을 때 사유리 씨는 일정상 어려워 거절했다. 최 대표는 다른 번역가를 찾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올해 2월 다시 제안했다. 사유리 씨는 해 본 적이 없었던 번역을 수락하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엄마가 ‘책은 남는다. 인생의 자산이 된다. 책과 관련된 건 뭐든 다 해 봐라’고 했어요. 책은 특별한 것 같아요. 제가 남희석 오빠를 비롯해서 친한 사람들에게 책 선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책을 고를 땐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생각하게 되고, 받는 사람도 기뻐하니까요.”
사유리 씨가 아들 젠을 업고 ‘달콤 짭짤 모두의 파스타’를 들고 있다. 라곰스쿨 제공
책에는 스파게티니, 링귀네, 마카로니 등 비교적 친숙한 이름부터 카넬로니, 루마코니, 파르팔레 등 낯선 이름의 다양한 파스타가 나온다.
“파스타가 계속 나오니까 파스타가 먹고 싶어지더라고요.(웃음) 파스타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파스타에 대해 엄청 공부했어요. 여학생인 미리가 친구들과 다투는 내용으로 시작되어서 아기자기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모험을 떠나며 이야기 규모가 아주 커지더라고요. 작가님의 상상력에 놀랐습니다.”
잘 모르는 표현이 있으면 사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래도 모를 땐 가까운 한국인 지인에게 전화해 물어봤다.
“한국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지, ‘고마워요’와 ‘감사해요’ 중 뭐가 더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은지 계속 물어봤어요.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대박’, ‘헉’처럼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도 살렸다.
“아이들 귀에 쏙 들어가야 재밌게 보잖아요. 지금 많이 쓰는 표현을 쓰면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여길 것 같았어요.”
최 대표는 사유리 씨의 번역 실력에 놀랐다고 한다.
“말맛을 살려 매끄럽게 번역한 덕에 손 볼 문장이 별로 없었어요. 번역 원고도 마감 날짜보다 2주 정도 빨리 보내서 놀랐어요.”
동화 ‘달콤 짭짤 모두의 파스타’ 책표지. 라곰스쿨 제공책은 초등학생이 읽기에 적합하다. 사유리 씨는 젠이 더 크면 읽어주겠다고 했다.
“다섯 살인 젠이 읽기엔 어려워요. 출판사에서 책 10권을 받았는데요, 젠 친구 중에서 초등학생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에게 선물했어요. 다들 좋아해줘서 제가 고마웠어요.”
동화책 번역을 또 하고 싶은지 묻자마자 곧바로 “아니요!”라고 외쳤다.
“너무 힘들었어요.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림책이나 시처럼 짧은 건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최대한 그림이 많은 걸로요!”
다른 이들과 매우 다른 길을 걸어가는 그는 책을 번역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닌데, 그렇게 배우면 틀렸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배우면 돼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다른 걸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냥 ‘다르구나’ 딱 거기까지만 인정하면 돼요.”
책 제목은 일본어 원제 ‘미리와 이상한 쿠스쿠스 씨, 파스타 나라의 혁명’과 완전히 다르게 지었다. 최 대표는 “아이들은 익숙한 단어의 제목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화해로 결말을 맺기에 이를 살려 ‘모두의’라는 단어를 썼고, 음식맛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붙였다”고 했다.
사유리 씨는 책을 통해 젠을 교육하려 애쓴다고 했다.
“젠이 화장실에서 ‘응가’하는 걸 배울 땐 그런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보여줘요. 양보하는 게 부족하면 양보에 대한 그림책을, 쉽게 울고 난리치면 그런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요. 제가 말하는 것보다 필요한 주제를 담은 책을 읽어주면 재밌으니까 귀에 쏙쏙 들어가거든요.”
그는 젠이 태어난 지 두 달 때부터 그림책을 매일 읽어줬다.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그래도 계속 읽어줬죠. 어느 날 물고기 그림을 보고 젠이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아직 말은 못하지만 엄마 말을 알아듣는구나 싶어서 벅차더라고요.”
지금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더 재미있다고 한다. 한데 체력이 부친다며 웃었다.
“책 읽어주는 건 체력이 진짜 많이 필요해요. 같은 책을 열 번, 스무 번 읽어달라고 하니까요. 저는 저녁밥을 못 먹어도 젠이 잘 시간이 가까워지면 책을 꼭 읽어줘요. 엄마가 ‘너는 학생 때 공부도 안 하고 숙제도 안 했으면서 자식은 진짜 열심히 공부시킨다’며 놀려요.(웃음)”
그는 젠에게 아름다운 한국어와 아름다운 일본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젠이 여러 언어를 섞어서 말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저는 한국어는 한국어로만, 일본어는 일본어로만 깔끔하게 썼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건 젠이 완벽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는 거예요. 저는 아무리 애써도 한국 사람처럼 한국어를 발음하지 못하거든요.”
젠을 키울 때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다.
“저는 대충 하는 스타일인데 젠이 밥 먹고 자는 시간은 정해진 대로 꼭 하도록 해요. 그렇게 안 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그런 면이 제게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그 외 나머지는 엉망이에요.(웃음)”
그는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은 적이 꽤 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순간도 적지 않다. 이를 어떻게 견딜까.
“오해로 공격을 받을 땐 가만히 있는 게 나아요. 사람들은 자기 상상 때문에 화가 난 거니까요. 거기에 대고 아니라고 하면 더 화를 내요. 화가 풀어지면 ‘사실 이런 거였다’고 설명하면 돼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되고요. 다 지나가요. 제가 음주운전하거나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요. 다만 사과할 때는 핑계처럼 말하면 안 돼요. 마음을 담아서 사과해야 해요.”
그는 젠이 태어난 후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됐다고 한다.
“젠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 비난할 때면 ‘이게 그렇게 중요하고 힘든 건가’ 곰곰이 돌아봐요.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모기에 물린 거랑 같아요.”
그는 대중의 여러 반응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저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욕먹고 오해 받아도 감당할 수 있어요. 오해받아도 일주일이면 잊혀지더라고요. 만약 욕먹다가 방송을 못하게 되면 다른 일을 하면 돼요. 팔다리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내겐 젠이 있으니까요.”
그는 앞으로 그림책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젠이 그림책을 좋아하고 또 많이 읽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그림책에는 엄마와 아빠가 나와요. 현실에선 아빠가 없는 아이도 있고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도 있잖아요. 이런 내용을 그림책에 담고 싶어요. 다르게 사는 모습도 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달콤짭짤 모두의 파스타’(라곰스쿨·2025년)는….
초등학교 4학년 미리가 우연히 파스타 나라로 가서 파스타들이 다른 생김새 때문에 서로 대립하다 화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이야기를 그린 동화다. 일본 작가 도모리 시루코가 쓰고 방송인 사유리 씨가 번역했다.
미리는 같은 반 친구 사쿠라의 엄마가 나비 모양 파스타에 매니큐어를 발라 만든 머리핀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무심코 말해 버린다. “음식으로 그런 걸 만들어도 되는 거야? 좀 아깝지 않아? 사쿠라 너네 엄마가 좀 잘못한 것 같아.” 곧바로 사과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리는 집으로 가던 길에 막다른 골목길에서 구불구불하고 커다란 빨대 같은 통로에 빨려 들어간다. 미리가 떨어진 곳은 파스타 나라. 스파게티니, 부카티니 같이 길쭉하게 생긴 롱파스타와 파르팔레, 푸실리 등 짧은 쇼트파스타가 있다. 이들에 속하지 않는 넓적하게 생긴 라사냐, 속을 채운 라비올리 등 온갖 종류의 파스타들이 산다.
한데 롱파스타와 쇼트파스타는 감정의 골이 깊다. 생김새 때문에 롱파스타로부터 놀림 받아온 쇼트파스타가 공격해 롱파스타가 사라질 상황에 처한다. 미리는 위기를 막으려는 노랑머리의 쿠스쿠스를 만나 함께 길을 떠난다.
다른 모습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과 최악의 충돌을 막으려는 노력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반목을 초래한 계기가 밝혀지며 뜻밖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모험을 통해 흥미롭게 그렸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쿠스쿠스에게 “그럼 뭐냐”고 묻는 미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눈길을 끈다. “나는 그냥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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