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도연 “‘생일’, 그래도 해야 하는 이야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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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영화 ‘생일’을 내놓는 배우 전도연.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관객에 손을 내민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4월3일 영화 ‘생일’을 내놓는 배우 전도연.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관객에 손을 내민다.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4년 만에 관객 앞에 나선 전도연(46)의 모습은 마치 시간을 역행한듯 보였다.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옅은 미소까지 더하니 한층 편안해 보이는 얼굴. 타고난 ‘동안’이라고 해도 그 나이쯤 되면 마음에 따라, 건강에 따라, 때때로 변화하는 게 외모 일 텐데 전도연은 예외다.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제작 나우필름·레드피터) 개봉을 앞두고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전도연은 작품 이야기와 더불어 건강하게 빛나는 외모에 대해 여러 차례 비슷한 질문을 받고 있다. “다들 비결을 묻는 데, 없는 비결을 만들어야 하나 싶다”면서 그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로 돌아오기는 4년 만이다.

“4년 사이에 제 모습이 달라졌다면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지, 흥미가 없지, 그런 시간을 보냈거든요. 예전엔 술 한잔하면서 영화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비록 몸은 피폐해지지만.(웃음) 요즘은 그런 일조차 노력이 필요해요. 약속 한 번 잡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그래서 집에 있어요. 집에서 막걸리 한잔, 와인 한잔 마시는 게 더 좋아요.”

전도연은 ‘운동 마니아’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그마저도 집중하지 않았다고 했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촬영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초등학생인 딸을 챙기고 집안일까지 손수 하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제 생활의 기준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서인지 더 규칙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그는, 그러면서도 “거울을 보면서 뭔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에 슬플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 ‘생일’로 돌아온 배우 전도연

변하지 않은 건 외모만이 아니다. 전도연은 관객의 기대에 ‘변함없이’ 부응한다. 개봉을 이틀 앞둔 ‘생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영화에서 확인되는 전도연의 모습은 단순히 ‘연기’라고만 표현하긴 어렵다. 배우가 캐릭터에 그대로 젖어들었을 때에야 관객에 전달되는 ‘전율’이 뭔지, 몸소 보인다.

처음 제작진으로부터 ‘생일’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전도연은 망설임 끝에 거절했다. 앞서 ‘밀양’을 함께 하고 ‘남과 여’ 등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신뢰를 나눈 제작진의 제안이었지만 선뜻 응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결국 출연을 승낙할걸 처음엔 왜 거절할 수밖에 없었을까.

“출연을 고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이종언 감독님이 글을 썼고 작품을 만든다고 하길래 ‘무슨 이야기에요?’ 물었죠. 세월호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과 똑같이 되물었어요. ‘지금 세월호 이야기하는 게 괜찮아요?’라고요.”

그렇게 시나리오를 받은 전도연은 그대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쩔 수 없이 눈물도 “펑펑” 흘렸다고 했다. 문득 영화 ‘밀양’과 그 작품에서 소화한 인물 신애도 떠올랐다. “신애를 하고 난 뒤론 다시는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안 할 거라고 다짐”했다고 돌이켰다.

전도연은 혼자 결정할 수 없어 몇몇 가까운 지인들에 모니터를 부탁했다. 돌아온 답변도 그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걱정 어린 조언이 대부분. 의견을 준 이들 가운데는 ‘영화 말고 부수적인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것 같다’는 우려를 꺼낸 이도 있었다고 했다.

“세월호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과정 속에 있고 어떤 오해와 편견도 있고요. 영화 외적으로 힘들지 않겠냐고, 상처받지 않겠냐는 걱정이었어요.”

출연을 결정한 건 혹시 돌아올지 모를 그 ‘상처’를 감당하겠다는 뜻이었다.

“네, 감당했어요. 물론 제가 기사 댓글을 꼼꼼히 보는 편이 아니고 SNS도 하지 않아서 덜 예민하게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또 그런 문제는 예민하거나 예민하지 않는 문제도 아니잖아요. TV만 틀어도 뉴스로 계속 나오는 이야기니까. 각오를 했죠.”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과 전도연은 ‘밀양’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감독은 당시 현장 스크립터의 역할을 맡았다. ‘밀양’ 현장에서 편히 서로를 “종언아”, “언니”라고 부르던 호칭도 ‘생일’을 거치면서 바뀌었다.

전도연은 “나보다 훨씬 먼저 이 이야기를 갖고 온 감독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충분히 응원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밀양’ 때 이종언 감독은 내 눈도 마주치지 못했어요. 하하! 어떤 말을 하면 제가 지적하고 그랬죠. ‘생일’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호칭을 ‘감독님’이라고 했어요. 존중이 생겼고, 그에게 힘이 돼 주고 싶었죠. 그건 꼭 감독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고요. (세월호에 대해)이야기 하는 걸 힘들어하고, 미안한 마음에 외면했으니까요.”

전도연은 지금 누군가 자신에게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괜찮아졌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라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내가 너무 비겁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아요. 안 했으면 너무 후회했을 것 같은 작품이죠.”

● “그래도 해야 하는 이야기, 여럿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

‘생일’은 2014년 4월16일 이후 남겨진 ‘우리’의 이야기다. 전도연이 맡은 순남은 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 계절이 바뀌면 아들의 새 옷을 사고, 잠 못 이루는 밤 시시때때로 켜지는 고장 난 현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혹여 아들이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영화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유가족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참사로 친구와 이웃을 잃은 또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뜻하지 않은 재난과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전도연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실제 유가족은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출연을 결심한 뒤엔 시나리오에 집중할 뿐이었다”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배우의 실제 경험은 자신이 맡는 캐릭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밀양’에 참여할 때 전도연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를 연기해야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실제 어린 딸을 둔 그에게 다시 한 번 아이를 잃은 엄마가 주어졌다.

“엄마의 마음이 뭔지 잘 알고 있으니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이번 영화는 꼭 엄마가 아니어도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번엔 다른 의심을 했어요. 내가 순남을 표현하고 있는지, 아니면 전도연으로 마음이 앞서는지 말이죠. 내 감정이 너무 앞서 슬픔을 표현하는 건 아닌가 하고요. ‘밀양’의 신애와 ‘생일’의 순남은 다르지만 그 미묘한 감정은 결국 제 안에서 표현되는 거잖아요. 관객 입장에선 ‘저 오열 장면은 어디서 봤는데’ ‘밀양에서 본 거 아닌가’ 할 수도 있죠. 둘 다 전도연인데….”

전도연은 “힘들고 어려운 장면이면 오히려 미리 생각하거나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사만 완벽히 외운 상태에서 카메라 앞에 나서 “나에게 맡긴다”라고 했다.

자신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직관’ 혹은 ‘본능’에 따라 연기하는 전도연은 영화에서만큼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번 ‘생일’의 순남도 전도연이 아닌, 과연 어떤 배우가 해낼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 ‘밀양’도 마찬가지다. 그를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영화 ‘해피 엔드’는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작인 ‘남과 여’ ‘무뢰한’도 그랬다.

때문에 영화계 한쪽에선 ‘전도연은 어려운 역할만 한다’는 편견도 꺼낸다. 전도연은 부인하지 않았다.

“(어려운 역할을) 제가 군말 없이 잘 하니까! 하하하! 물론 잘 한다고 해서 그걸 즐기는 건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피하지 않는 거죠. 결정하면 어떻게 할지만 생각해요. 연기도 그렇지만, 일상에서도 저는 ‘일단 부딪쳐보자’는 주의에요. 해보지도 않고 피하는 게 제일 싫어요. 찜찜하고 불편하게 있느니 대면해서 해결해야 해요. 끙끙 앓고만 있지 않죠.”

‘생일’ 개봉을 앞둔 요즘 전도연은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다. 영화에 관객이 내릴 평가가 기다려지고 있다. 불과 5년 전 일어난 참사, 앞으로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는 작업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지난해 4월 촬영을 시작해,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1년의 시간을 ‘생일’과 함께 살아온 전도연은 “그래도 해야 하는 이야기이고, 여러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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