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TV사극의 대부 신봉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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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국방부가 300만 환을 내걸고 시나리오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3억 원 넘는 상금을 거머쥔 당선자는 강원 강릉의 한 초등학교 교사. ‘현대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그가 새 장르에 도전한 것은 시만 써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금을 받고 의기양양해 서울의 유명 양복점에서 친구 20여 명의 옷을 맞춰주며 통 큰 인심을 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원고청탁서에 치여서 죽는가 보다’라며 내심 걱정한 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 어디서도 청탁은 오지 않았고 그는 조용히 강릉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시나리오를 쓴 경험은 훗날 그가 ‘사모곡’ ‘연화’ ‘별당아씨’ 등 대한민국 TV사극의 1인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제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원로극작가 신봉승 씨의 얘기다.

▷그가 등장하면서 야사 중심의 사극은 방대한 독서와 고증을 통한 정통 역사물로 물꼬를 트게 됐다. 만 쉰 살 때부터 8년간 방영된 대표작 ‘조선왕조 500년’의 모태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되기 전이라 혼자서 떠듬떠듬, 때론 한학자의 도움을 빌려 2, 3회 원전을 완독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모두 413권. 하루 100쪽씩 읽어도 꼬박 4년이 걸린다. 웬만해선 진력이 빠져 그거 다 못 읽는다. 나는 40년 세월을 그걸 붙들고 살았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역사 고증과는 담쌓은 사극이 주목받는 시대다. 역사적 사실과 인문적 상상력의 만남으로 정사(正史)의 대중화에 기여한 그의 상실이 아쉽다. 사팔뜨기 간신으로 폄하된 한명회나 부인에게까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고 알려진 신숙주는 신봉승 사극을 통해 재조명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는 식민사학에 짓눌린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점에 자부심을 표시했다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그가 남긴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제 맘대로 한 적이 없다. 선비들은 임금에게 직언하고 배운 대로 행했다. 신하들이 임금을 무턱대고 따라 한 적이 없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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