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소녀, 소년…순해지는 아이돌 그룹 이름,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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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소년24’ ‘우주소녀’….

빛바랜 책장 속 국산만화 제목이 아니다. 최근 인기리에 활동하거나 데뷔를 앞둔 아이돌 그룹 이름이다. 여자, 소년, 소녀…. 소박하다 못해 평범해 보이는 단어들이 아이돌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데뷔한 6인조 여성그룹 여자친구는 25일 낸 세 번째 미니앨범 ‘SNOWFLAKE’로 또 한 번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소년24는 CJ E&M이 향후 3년간 25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초대형 프로젝트다.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거쳐 24명의 남자 아이돌을 선발한 뒤 8월부터 서울 명동에서 상설 공연을 연다. 씨스타를 성공시킨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중국 위에화엔터테인먼트와 손잡아 만든 한중합작 12인조 여성그룹 우주소녀도 곧 데뷔한다.

1990년대 중반 아이돌 태동기부터 한번에 뜻을 알기 힘든 영어명, 약어, 조어가 그룹명에 즐겨 쓰인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아이돌 이름이 순해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와 가요계 관계자들은 △아이돌 시장 포화 △중국 시장 가시화 △최근 가요계의 소년-소녀 이미지 열풍에서 그 답을 찾는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섹시 콘셉트, 강한 힙합 아이돌 붐이 지나고 청순한 소년-소녀 이미지가 최근 떠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첫사랑 소녀의 이야기를 내세운 여자친구, 러블리즈, 오마이걸, CLC, 라붐 같은 여성그룹이 올라왔고, 남성그룹 중엔 빅스, BAP의 처절하고 어두운 이미지 대신 세븐틴, 샤이니(‘View’), 방탄소년단(‘화양연화’ 시리즈)의 소년 느낌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소년’ ‘소녀’는 아이돌에 가장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키워드여서 비슷한 아이돌을 모두 대표한다는 이미지를 풍길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젠 외국 팬들도 웬만한 한글은 쉽게 번역해 이해하는 상황이다. 어설픈 영어보다 쉬운 한글이 낫다는 고려도 있다. 남성그룹 인피니트의 경우, 해외 팬들 사이에서 “명사형인 ‘인피니티’도 아니고 어법적으로 어색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아이돌 초기엔 작명 트렌드가 H.O.T.형과 젝스키스형으로 크게 나뉘었다”고 말했다. 영문 약자 아니면 뭔가 있어 보이는 외국어 단어가 대세였다. 그는 “동방신기와 소녀시대가 성공한 뒤 한국어 이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국시장이 가시화되면서 한자어, 또는 중국어로 바로 번역이 가능한 단어가 쓰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엔 5인조 여성그룹 ‘여자여자’도 데뷔했다. 소속사 에이치브라더스엔터테인먼트의 안효민 대표는 “나이가 있는 분들은 ‘그룹명이 촌스럽다’ ‘트로트 그룹이냐’고 묻지만 젊은층의 반응은 반대다. 매우 여성스럽다는 의미의 최근 유행어 ‘여자여자해’를 참고했고, 여성이 여성에 반하는 걸 크러시(girl crush) 트렌드도 노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중국 CCTV 녹화를 하고 왔는데 현지 관계자들이 ‘니주니주(女子女子의 중국식 발음)라니 쉽게 기억된다’며 재밌어 했다”고 덧붙였다.

‘소년24’를 제작하는 CJ E&M 음악사업부문 관계자는 “‘소년’은 한중일 3국이 손쉽게 이해할 수 있고 미국 등 영어권에서도 ‘boys’ 등으로 쉽게 번역된다. 글로벌 시장을 고려한 직관적인 작명”이라고 설명했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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