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코믹물, 이유있는 A급 흥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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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6일차 영화 ‘스파이’… 관객 100만 육박 깜짝 선전

내근요원으로만 일하다 갑자기 현장에 투입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수전 쿠퍼(멀리사 매카시)는 외모를 장점(?)으로 이용한다. 고양이 키우는 싱글녀, 텔레마케터 아줌마 같은 우스꽝스러운 신분으로 누구든 감쪽같이 속여 넘긴다. 영화인 제공
내근요원으로만 일하다 갑자기 현장에 투입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수전 쿠퍼(멀리사 매카시)는 외모를 장점(?)으로 이용한다. 고양이 키우는 싱글녀, 텔레마케터 아줌마 같은 우스꽝스러운 신분으로 누구든 감쪽같이 속여 넘긴다. 영화인 제공
전직 교사 출신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수전 쿠퍼(멀리사 매카시)는 뚱뚱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주변의 무시로 내근 업무만 해온 인물이다. 그런데 현장요원들이 테러 조직에 모두 노출되자 그에게 신분을 숨기고 테러 조직에 접근하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스냅백을 쓴 ‘루저남’에 이어 킬힐을 신은 ‘왕언니’도 극장가를 점령할 수 있을까. 올 초 ‘찌질남’의 성장담을 내세운 스파이 영화 ‘킹스맨’이 흥행한 데 이어 여성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한 ‘스파이’(15세 이상)도 깜짝 흥행하고 있다. 개봉 6일 차인 26일까지 누적 관객은 96만여 명. 의외로 흥행에 성공한 ‘킹스맨’(82만7000명)의 기록도 앞섰다. 주인공 쿠퍼에게 선배 스파이들이 준 교훈과 흥행 노하우를 짚어봤다.

○ ‘오스틴 파워’의 B급 정서

도저히 스파이처럼 보이지 않는 스파이가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다. 그들 앞에서 심각해야 할 첩보원의 세계는 우스꽝스러워진다. 쿠퍼의 위장용 가짜 신분은 고양이 10마리를 키우는 싱글녀이자 실직한 텔레마케터다. 스파이의 필수품인 비밀 무기는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무좀약과 마비 기능이 있는 치질 환자용 물티슈다.

땅딸막한 외모와 달리 강력한 ‘모조(마력)’로 닥터 이블을 물리쳤던 오스틴처럼 쿠퍼 역시 존재 자체가 반전이다. 다만 딴짓에 몰두하는 오스틴과 달리 그는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뛰어난 판단력과 순발력으로 아버지의 테러 조직을 물려받은 레이나(로즈 번)를 돕는 척하며 단숨에 적의 심장부에 접근한다.

○ ‘솔트’의 강력한 액션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는 여성 스파이는 의외로 드물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솔트’ 등 스파이 영화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였던 앤젤리나 졸리는 유일무이한 배우였다. 매카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날 때부터 스파이였을 것 같은 졸리와 달리 쿠퍼는 처음에는 사람을 죽이곤 왕창 토할 정도로 심약하다. 하지만 그는 점점 진화한다. 킬힐에 화려한 의상까지 장착한 그는 도로 위 추격전은 물론이고 추락하는 비행기와 헬기에서 총, 칼, 맨손으로 싸운다. 졸리 못지않은 날렵함에 특유의 무게감을 더한 액션은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 ‘미션 임파서블’의 반전

동료 간의 의리와 배신은 스파이 영화의 주요 테마. 늘 내부의 적을 숨겨놨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스파이’에도 내부의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군지 알아채기는 힘들다. 교묘해서가 아니다. 하나같이 너무 허술해서다. 최고의 요원 파인(주드 로)은 쿠퍼 없인 무력하고, 능력만큼은 불사신에 가까운 포드(제이슨 스테이섬)는 현실 감각이 없어 나사 하나 빠진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쿠퍼의 가슴을 움켜쥐며 ‘작업’ 거는 알도(피터 세러피너위치)도 성가실 때가 더 많다. 쿠퍼처럼 내근요원이었던 동료 낸시(미란다 하트)나 쿠퍼에게 속아 그를 보디가드로 고용하는 레이나 역시 빈틈이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쿠퍼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인물은 분명 있으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스파이 영화의 법칙을 고루 지키면서 의외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파이 영화의 문법을 비틀었다는 점에서 ‘킹스맨’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멘토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킹스맨의 에그시(테런 에거턴)와 달리 쿠퍼는 대부분 혼자 힘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런 점에서, 킬힐은 스냅백보다 세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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