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다고? 그런 말 마시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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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으로 충무로 안착… 스타PD 출신 이재규 감독

《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역린’의 이재규 감독(44)은 아침을 걸렀다면서도 커피를 주문했다. 인터뷰는 흡연이 가능한 야외에서 하자고 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역린’이 18일까지 관객 365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영화 개봉에 즈음해 “지나치게 진지하다”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 같다”는 비평의 ‘융단폭격’을 받기도 했다.
내상(內傷)이 깊어 보였다. 드라마 ‘다모’(2003년)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를 연출한 스타 PD 출신인 그가 영화 데뷔에서는 흥행과는 별개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       
       

‘다모’에 이어 두 번째로 사극을 만든 이재규 감독은 사극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극에는 살아보지 못한 시공간을 재현하는 재미,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이 보이는 재미가 있죠. ‘역린’도 그렇죠.”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다모’에 이어 두 번째로 사극을 만든 이재규 감독은 사극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극에는 살아보지 못한 시공간을 재현하는 재미,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이 보이는 재미가 있죠. ‘역린’도 그렇죠.”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잘못 해석돼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에는 상처를 받았어요. ‘드라마로 돌아가라’ ‘드라마적이다’ 같은 비난들 말이죠. (배우, 스태프 등) 만든 이들 모두에게는 확신이 있었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물었다. 그는 조용조용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쏟아냈다.

“‘역린’은 드라마의 서술 방식과는 달라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에너지가 있는 영화죠. 즉물적 긴장보다는 관계와 관계가 부딪혀 긴장을 만드는 영화예요. 세 주인공인 정조(현빈) 갑수(정재영) 을수(조정석)가 함께 나오는 장면이 한 컷밖에 없어요. 어떤 관객은 이런 긴장을 몰랐을 것이고, 어떤 관객은 이런 긴장에 몰입했을 겁니다.”

담배 연기가 그의 입을 길게 돌아 나온 뒤 말이 이어졌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이 수단화된 시대입니다. 도구적 인간으로 살던 정조와 갑수, 을수가 정유역변(1777년 정조 암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인간 본성을 찾는 순간을 담고 싶었어요. 집단이나 시스템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사람들을.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역린’은 미장센(화면 배치를 통한 영상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왕실 이야기라서 (인물들의) 동선이 단순해요. 그래서 영화에서 표현된 이미지들이 더 큰 역할을 합니다. 대사와 지문 밖의 이미지가 이야기의 빈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을수가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잠들어 있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면이 말하고, 이미지가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드라마 PD와 영화감독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드라마 PD는 더 독단적이어야 해요. 한정된 시간에 촬영을 진행하는 효율성이 중요해요. 반면 영화는 고민할 시간, 대화할 시간이 있어 좋아요. 협업에 의한 시너지 효과가 있더라고요.”

2004년 MBC PD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뒤 불면증이 생겼다. 하지만 원래 꿈이었던 영화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대학(서울대 신문학과) 졸업 때까지 지금의 아내와 7, 8년 연애를 했어요. 결혼해야 하는데,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한 충무로에 갈 수 없었어요. 기형도의 시 중에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라는 시가 있어요. ‘베토벤 바이러스’의 모티브가 된 시이기도 해요. 시의 내용처럼 영화라는 게 저에게 살아가면서 잊고 있던 열망 같은 존재죠.”

그는 “앞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래도 영화가 더 좋단다. “앞으로 여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의 버디 영화(두 명의 파트너가 운명공동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델마와 루이스’ ‘그랑블루’ 같은 영화요.”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이재규#역린#드라마#다모#베토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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