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참 잘나가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맥 못춰, 리·메·이·크·영·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198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조제 파딜랴 감독의 2014년판 ‘로보캅’. 전작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관객 97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소니픽쳐스 제공
198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조제 파딜랴 감독의 2014년판 ‘로보캅’. 전작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관객 97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소니픽쳐스 제공
한국은 리메이크 영화의 무덤이다.

지난달 국내 개봉한 조제 파딜랴 감독의 ‘로보캅’은 13일 현재 관객 97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영화는 198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원작을 바탕으로 로보캅이 느끼는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의 정체성 갈등을 그려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개봉 5주차인 10일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9위에 오르며 5497만 달러(약 586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영국에서도 지난달 7일 개봉해 2월 마지막 주까지 흥행 순위 10위권을 유지했다.

1월 개봉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 성적은 더욱 처참하다. 전국 관객 7462명에 그쳤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 히트작을 리메이크해 국내에서 더 관심을 끌 만했지만 한국 관객은 철저히 외면했다.

버호벤 감독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렌 와이즈먼 감독의 ‘토탈 리콜’(2012년)도 지난해 8월 국내 개봉해 관객 121만 명을 모았다. 세계적으로는 1억9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흥행작이다.

슈퍼맨의 탄생기로 돌아간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지난해 6월 개봉)은 ‘슈퍼맨’ 관련 작품 중 최고 수익을 거둬들인 작품이다. 북미에서 2억9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지난해 북미 박스오피스 전체 5위에 올랐다. 하지만 국내 동원 관객 수는 218만 명이다.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의 성적도 시원찮다. 홍콩 영화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2010년)는 154만 명,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2007년)는 10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이고 127만 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관객이 리메이크 영화에 인색한 이유에 대해 호기심 많고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관객의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 관객은 다 아는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래서 시리즈물도 잘 안된다”고 말했다. 국내 시리즈 영화로 성공한 건 ‘투캅스’ ‘공공의 적’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에선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가 48편의 영화로 만들어져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관객의 특성은 장르 영화가 강세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전찬일 평론가는 “한국 관객은 쉽게 싫증내고 비슷한 이야기에 관대하지 않다. 그래서 비슷한 이야기를 변주하는 장르 영화의 구축이 더디다”고 했다.

김시무 부산영화제연구소장은 “리메이크는 고전에 대한 감독의 새로운 해석과 변형을 보는 맛이 있는데 한국인은 이런 관람법에 익숙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스토리에 대한 한국 관객의 강박에 대해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야기란 내가 느끼는 정서를 상대가 공감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감을 중시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으면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사람들에 비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반론도 있다. 리메이크 영화라도 새로운 즐길거리를 추가하면 흥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요소를 강하게 넣어 성공했다. 웹툰이 원작인 영화도 성공 사례가 많다. 콘텐츠의 전환과 변주는 현대 문화산업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박중훈 최진실이 주연한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년)가 임찬상 감독에 신민아, 조정석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다. ‘리메이크 필패론’을 깨고 흥행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 ‘속편 영화’ 일컫는 다양한 용어들

리메이크(Remake)는 이미 나온 영화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줄거리와 제목, 캐릭터 등 원작의 친숙함을 무기로 관객을 파고든다.

리부트(Reboot)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말 그대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를 리부트해 영화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만들었다.

스핀오프(Spin-off)는 원작에서 파생된 영화를 뜻한다. ‘엑스맨’ 시리즈에 등장한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울버린’과 ‘배트맨’ 시리즈에서 나온 ‘캣우먼’ 등이 대표적인 스핀오프 영화다.

전편의 다음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시퀄(Sequel)이라고 부른다. ‘대부’ ‘터미네이터’ 시리즈들이 1편에 대한 시퀄에 해당한다. 반대로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은 프리퀄(Prequel)이다. 2011년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1968년 처음 만들어진 ‘혹성탈출’의 프리퀄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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