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왼쪽부터 노홍철, 비스트의 양요섭. 데프콘, 강타. MBC 제공
극한의 현장이나 스포츠 체험을 앞세운 ‘독한 예능’이 범람하는 사이, 남자의 삶을 조명하는 잔잔한 예능 프로그램이 선전하고 있다. 특정 직업을 체험하기 위한 고강도 훈련 장면이나 해외 로케이션을 통한 화끈한 볼거리는 없지만, 출연자들의 일상 속 잔잔한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다. 사람들은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짠함과 함께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치열한 금요일 밤 예능 전쟁터에서 혼자 사는 시청자들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2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인 후 시청자 반응이 좋아 3월에 정규 프로로 편성됐다. AGB 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최고 시청률은 11.4%. 기러기 아빠인 김태원 이성재와 싱글남인 김광규 노홍철 데프콘(본명 유대준) 강타(본명 안칠현)가 고정 멤버로 출연한다.
‘나 혼자 산다’의 내용은 스타들이 밥 먹고 일하고 휴식하는 일상이 전부다. 이성재와 김태원은 침대에 밥상을 펴고 혼자 끼니를 때우고, 한때 신비주의 아이돌 스타였던 H.O.T.의 강타는 세수도 하지 않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애완견 4마리의 배설물을 치운다.
일상이 주는 즐거움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유명 연예인이 초대 손님으로 나오면 오히려 싫어한다. 13일 방송에 김민종 김용건 등이 특별 게스트로 나오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꾸밈없이 평범한 삶을 보여주던 초심으로 돌아가 달라” “특징을 잃고 요란한 손님이 나와 토크쇼 형식으로 가고 있다”는 불만 섞인 글이 올라왔다.
권장 섭취 칼로리만 먹기, 쓰레기 최소한으로 배출하기, 전기 없이 살아보기 같은 미션을 수행하는 KBS ‘인간의 조건’도 잔잔한 예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최고 시청률 10.1%). 이 프로에도 거창한 이벤트는 없다. 개그맨 6명이 일주일 동안 같은 숙소에서 지내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작은 실천으로 점차 변화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감동을 느낀다.
KBS 예능 ‘바라던 바다’에서는 남자들이 작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1박 2일간 항해한다. KBS 방송 화면 촬영KBS 파일럿 예능 ‘바라던 바다’(최고 시청률 4.3%)는 삶에 지친 남자들을 위로하는 프로다. 일탈을 꿈꾸는 남자 6명이 작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1박 2일간 항해를 하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남희석 이훈 정형돈과 아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홀로 지내는 신현준이 출연한다. 기혼 남성들은 “가족이 싫어서 가출하고 싶은 게 아니라,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갖고 싶어서다”라는 남희석의 발언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화려한 볼거리도 없는 남자들의 일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바라던 바다’의 조성숙 PD는 “MBC ‘진짜 사나이’에 여자들이 열광하듯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남녀 모두 관심을 보인다”며 “남자의 삶이 드러내는 고단함과 희열 같은 인생의 단면들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공감을 끌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남자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면, 예능에서 진솔함을 보여주는 남성 출연자에게선 자기 곁에 있는 남자친구나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다. 남자의 삶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여성들도 남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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