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극장 없는 배급사가 더 잘나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극장 보유의 역설’ 들여다보니…

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17일까지 547만 명이 든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맨 오브 스틸’에 맞서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다. 쇼박스 제공
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17일까지 547만 명이 든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맨 오브 스틸’에 맞서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다. 쇼박스 제공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열풍이 거세다. 이 영화는 13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맨 오브 스틸’이 개봉한 후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7일까지 관객 수는 547만 명. 올해 개봉한 ‘7번방의 선물’(1280만 명)의 기록을 깨기는 어렵겠지만 ‘베를린’(717만 명)은 넘어설 기세다. 이 영화는 오리온그룹 계열의 투자배급사 쇼박스 작품이다. 쇼박스의 1월 개봉작 ‘박수건달’도 390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뉴)의 올해 성적은 더욱 눈부시다. 뉴는 국내 4대 배급사(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뉴)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다. 뉴는 ‘7번방…’에 이어 한국형 누아르 ‘신세계’로 468만 명을 모았다. 5월 16일 개봉한 ‘몽타주’도 200만 명을 넘겼다.

약진하는 쇼박스와 뉴는 모두 극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계의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 중 하나는 상영관 몰아주기. 같은 CJ그룹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GV는 투자배급사 CJ E&M의 영화에 스크린을 후하게 배정해 준다. 지난해 CGV는 CJ E&M의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상영관을 몰아줘 빈축을 샀다. 롯데시네마도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영화를 우대한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스크린 수는 2081개. 이 중 CGV는 전체의 41%에 해당하는 858개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시네마(590개)까지 합치면 전체 스크린의 69%. 두 회사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한 영화감독은 “CJ와 영화를 같이 하면 관객이 최소 50만∼60만 명은 더 든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라고 전했다.

이런 유리한 조건에도 CJ와 롯데의 관객 동원 실적은 부진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4대 투자배급사 중 편당 관객 수 1위는 쇼박스. 쇼박스는 8편을 극장에 선보여 246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편당 평균 307만 명을 모은 셈이다. 2위는 역시 극장 체인이 없는 뉴다. 뉴는 11편으로 1885만 명을 모아 편당 171만 명. ‘흥행 타율’이 높은 두 회사에 비해 CJ E&M은 27편을 선보여 편당 관객 수 156만 명으로 3위에 그쳤다. 롯데엔터테인먼트도 22.5편으로 작품 수는 많지만 평균 관객 수는 80만 명에 불과해 4위다.

쇼박스의 효자는 지난해 1298만 명을 모으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운 ‘도둑들’. 이 밖에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471만 명을 기록했다. 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489만 명,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459만 명, ‘부러진 화살’로 345만 명을 모았다.

쇼박스와 뉴의 약진, 그리고 CJ와 롯데의 부진은 ‘극장 보유의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여건이 불리한 쇼박스와 뉴의 절박함이 흥행 타율을 높였다고 본다. 정지욱 평론가는 “2007년 극장 체인 메가박스를 매각한 쇼박스나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뉴는 콘텐츠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쇼박스와 뉴의 영화는 참신한 소재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CJ와 롯데의 경우 계열사 극장을 채울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야 하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제작편수가 많으면 흥행이 안 되는 영화도 나오고 타율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쇼박스나 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엄선한 영화만 만들면 되지만 CJ와 롯데는 극장에 발목이 잡혀 더 많은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투자배급사#쇼박스#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극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