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윤제문과 매일 막걸리 단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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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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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개봉 ‘고령화 가족’ 감독 송해성

송해성 감독의 실제 가족이 궁금했다. “누나가 일곱인 외아들인데, 막내 누나가 좀 튀었죠. 학교에서 제일 ‘잘나갔던’ 누나 덕분에 저를 건드리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송해성 감독의 실제 가족이 궁금했다. “누나가 일곱인 외아들인데, 막내 누나가 좀 튀었죠. 학교에서 제일 ‘잘나갔던’ 누나 덕분에 저를 건드리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술이나 한잔 하죠.” 영화 ‘고령화 가족’(9일 개봉)의 송해성 감독(49)은 인터뷰 요구에 술 얘기를 꺼냈다. 애주가로 이름난 감독다웠다. “내가 잘 아는 막걸리 집이 있는데….” 막걸리와 이 영화는 잘 어울렸다. 진한 가족애를 그린 영화. 이 영화와 송 감독도 ‘딱’이었다.

2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술집에서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술터뷰’가 시작됐다.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사 여기저기 찾아갔는데, 다 까였어요. 근데 박해일이 전화를 했어요. ‘감독님 할게요.’ 속으로 좋았지만 한 번 튕겼죠. ‘다시 잘 생각해봐.’ 이후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선생님까지 캐스팅이 술술∼. 해일이의 전화가 영화를 살린 거죠.” 화려한 캐스팅이 이루어지자 CJ E&M이 투자자로 나섰다.

영화는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 세상에 둘도 없는 ‘콩가루 가족’이 빚어낸 찰떡같은 이야기다. 44세 장남 한모(윤제문)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별’을 몇 개 달더니 70이 다 된 엄마(윤여정) 집에서 빈둥빈둥 산다. 40세 차남 인모(박해일)는 영화감독인데 목 매달 궁리만 한다. 하는 영화마다 말아먹었다. 두 번 이혼한 35세 막내딸 미연(공효진)은 딸 민경(진지희)을 데리고 엄마 집으로 온다. 동거를 시작한 세 남매의 기구한 사연이 펼쳐진다.

“원작의 인물들은 너무 세서 많이 바꿨어요. 원작에 한모는 성폭행 전과도 있는 흉악한 인물이고, 엄마는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여인이죠. 남매들 간의 반목도 심했는데 영화는 가족애를 강조합니다.”

송 감독은 배우들의 호흡이 가족 같아야 한다고 봤다. “매일 이 술집에서 단합대회를 했어요. 박해일은 ‘한모 역할이 중요하다’며 ‘내 출연 분량을 자르더라도 윤제문의 것을 빼지 말라’고 했죠. 우애가 돈독해졌어요. 윤제문은 무표정일 때 굉장히 웃긴 배우인데, 기존 영화에서 조폭 이미지로만 써먹었어요. 그의 코미디 능력을 잘 살리려고 했죠.”

촬영 현장에도 영화의 ‘이념’(가족애와 인간미)을 적용했다. “촬영 전 배우들에게 소모적으로 찍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한 장면을 여러 번 다시 찍는 걸 하지 않았어요. 촬영 분량을 다 붙여보니 133분이 나왔는데, 영화 상영시간이 112분입니다. 촬영 중 배우들이 묻어 둔 즐거운 흔적이 관객에게 전이돼야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촌스럽지만 따뜻한 영화를 구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움직였다. “우리 영화에는 요즘 기획 영화에서 많이 쓰는 클로즈업이 거의 없어요. 클로즈업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구속이에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넓은 화면 안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었어요.” ‘마더’ ‘태극기 휘날리며’ ‘설국열차’ 등으로 이름난 홍경표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막걸리 주전자가 대여섯 번 비었다 찼다. 어느새 술잔에는 아세트알데히드가 빚어 낸 붉은 달 네 개가 떴다. 송 감독의 붉은 눈동자와 기자의 벌게진 두 볼. 술이 송 감독의 속내를 비췄다.

“감독에게 실패한 전작은 ‘주홍글씨’ 같아요. ‘무적자’는 중간에 투자자가 바뀌며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게 찍었죠. 좋은 영화가 나올 리 없죠. ‘역도산’은 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데,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 참패했어요.”

기자는 그의 성공한 영화들을 거론했다. 2001년 개봉한 ‘파이란’은 지금도 다음 카페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 3980명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313만 명이 봤다. “파사모 회원들은 지금도 만나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이런 맛에 영화감독 하는 것 아니겠어요.”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자 달빛을 시샘한 가로등불이 그의 길어진 그림자를 뒤뚱거리게 했다. 시계 분침과 시침이 11자에서 만나고 있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고령화 가족#송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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