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콜로라도 총기난사는 과연 ‘다크 나이트’와 관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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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0일 0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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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지난 한 주 미국사회 최대 뉴스는 이른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난사(The Dark Knight Rises Shooting)’로 알려진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7월20일 새벽 12시30분경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 시에 위치한 극장 센추리16에서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상영 중이던 8관과 9관에 괴한이 침입, 연막탄을 뿌리고 총기를 난사해 극장관객 12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당했다. 극장 주차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콜로라도대학 의과대학원 박사과정을 막 자퇴한 24세 백인청년 제임스 홈스로 밝혀졌다.

▶범인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간 연관성은 ‘전혀’ 없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언론은 일제히 홈스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간 연관성을 찾아내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 ‘근거’들 다수는 인터넷상에서 유포된 각종 불투명한 정보들이었다. 이를 번역한 서울신문 7월24일자 기사 ‘美 총기난사범 법정 출두 ‘사형 선고 구형 예정’ 관심 집중’을 살펴보자. 기사는 23일(현지시각) 법정에 출두한 홈스의 면면을 보도하면서 “영화 속 조커처럼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홈스는 “나는 조커다”라고 외치며 관객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또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등장하는 새로운 악당 베인처럼 방탄조끼와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중 홈스가 “나는 조커다”라고 외치며 총기를 난사했다는 부분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당시 극장 안에 있던 그 누구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영화 속 조커처럼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는 부분은 거의 난센스에 가까운 대목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히쓰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거의 대부분 장면에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있다. 영화포스터에서도 조커의 머리색은 녹색이다.

한편 홈스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악역 베인처럼 방독면을 착용했다는 점도 실제와 다르다. 베인이 영화에서 착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투구의 모양새에 가깝다. 홈스가 착용한 방독면과는 생김새 자체가 다르다. 또 홈스는 방독면을 ‘멋’이 아니라 자신이 투척할 연막탄 피해를 막기 위해 ‘실용성’ 차원에서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자 좀 더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홈스는 딱히 배트맨 프랜차이즈의 팬이라 보기 힘들고, 나아가 폭력영화 전반에 대해서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홈스는 의외로 월트 디즈니 영화들을 좋아했으며, ‘패밀리 가이’나 ‘심슨가족’ 같은 TV애니메이션, 그리고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영화 ‘덤 앤 더머’의 광적인 팬이었다. 그가 살던 집 벽엔 윌 패럴 주연의 코미디영화 ‘앵커맨’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홈스는 심지어 폭력적인 게임조차 즐기지 않았다. 그가 가장 즐기던 게임은 기타연주게임 ‘기타 히어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틸컷.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틸컷.

궁극적으로 홈스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관을 찾은 것은 영화 그 자체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그저 대량학살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은 것뿐이다. 심야, 밀폐된 공간, 어두운 시야, 소지품 조사를 받지 않는 환경, 그리고 올해 최고 기대작 첫 상영이어서 가득 차 있을 것이 분명한 관객석. 이 같은 조건만 갖춰졌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아니라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어도 같은 결과였으리란 것.

▶미야자키 하야오를 숭배했던 일본의 여아 연속 살해범

어찌됐건 언론이, 그리고 일부 정치계가 폭력영화와 실제 폭력사태 간 연관성을 들먹여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폭력영화가 실제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학계 연구결과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영향에 있어선 극히 미미한 수준 이상으로 측정돼온 바가 없다. 반대로 폭력영화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을 통해 대중의 잠재된 폭력욕구를 해소시켜준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나아가 홈스와 같은 정신이상자의 대중문화소비패턴은 으레 짐작하는 폭력적 콘텐트->폭력적 행동 구도와 아무 연관도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홈스와 비슷한 사례로, 1989년 여아(女兒)연속 살해사건 범인으로 체포된 일본의 연쇄살인범 미야자키 츠토무(당시 26세) 상황을 들 수 있다. 4~7세 사이 여아 4명을 살해한 뒤 성적으로 유린한 혐의 모두를 인정했으며, 여아 인육까지 먹었다고 자백해 일본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당시 일본언론은 미야자키의 방에서 수천 편의 공포영화와 성인영화 비디오가 발견됐다며 자연스럽게 폭력·엽기영화->폭력·엽기행각 구도를 내밀었다. 그러나 이후 사건을 취재한 한 기자가 ‘커밍아웃’함으로써 전혀 다른 입장이 대두됐다. 미야자키가 수집한 5763편의 비디오 중 폭력·엽기적 내용이 담긴 건 불과 40편 정도로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 그보다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나 ‘울트라맨’ ‘고질라’ 같은 특수촬영물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같은 성을 지닌 일본애니메이션계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를 존경, 그의 영화엔 ‘미야자키 하야오 씨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씨의 토토로’란 식으로 따로 라벨을 붙여놓았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일본언론은 폭력·엽기 범죄와 아무 관련도 없는 애니메이션·특수촬영물 팬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들인 양 그리며 이른바 ‘오타쿠 탄압’에 나섰다. 초식남 원조와도 같은 이들 오타쿠 계층은 실제 범죄율이 극히 낮고, 앞선 미야자키 츠토무만 하더라도 정신감정을 통해 그가 수집한 비디오와 그 정신상태 사이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어떻게든 대중문화소비와 범죄 사이 연관을 지으려 한 언론의 ‘닥치고 관련’ 풍조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편견은 2005년 ‘전차남’ 열풍 등을 통해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 20년 가깝게 지속됐다.

▶미국·일본보다도 심한 한국언론의 ‘대중문화 때려잡기’ 보도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언론 역시 대중문화소비와 범죄 사이 ‘닥치고 관련’을 주장하는 데엔 미국이나 일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집에 폭력영화 DVD가 몇 편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영화가 폭력을 낳았다’는 식 결론을 내리기 일쑤고, 이런 논리에 방해되는 팩트들은 대부분 폐기처분시킨다. ‘아귀’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발생한 세칭 ‘명문대생 부모 토막살해 사건’만 해도 그랬다. 범인 이모군이 영화광이란 점을 들어 폭력영화 폐해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봇물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이모군이 ‘인어공주’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팬이란 점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 소재 사단에서 발생한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은 더 심했다. 연합뉴스 2005년 6월20일자 기사 ‘총기난사 金일병은 ‘게임광’’은 “총기를 난사한 김 일병은 거의 ‘컴퓨터 게임광’에 가까울 정도로 게임을 즐긴 것으로 동료 병사들은 진술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면서 “김 일병이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는 병사들의 진술이 있었다. 만약 그가 컴퓨터 게임을 광적으로 즐겼다면 순간적으로 내부구조가 사각형인 GP 내부를 같은 사각형 컴퓨터 화면속의 가상현실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군 관계자 설명을 함께 전했다. 나아가 “김 일병은 고참들이 말을 걸거나 지시를 하면 대답을 잘 하지 않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부대원들의 증언은 게임세대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줄이면, 사각형 방은 게임화면과 비슷하니 게임과 혼동을 일으켜 대량학살을 일으킬 수 있고, 게임세대는 고참이 지시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이들이란 주장이다. 전체인구의 61.1%(2007년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조사)에 해당된다는 한국 게임인구를 상대로 나온 주장이다. 이쯤 되면 정말 막 나가자는 거다.

더 가까운 예도 있다. 최근 발생한 경남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 상황이다. 중앙일보 7월24일자 기사 ‘통영 살해범 PC서 야동 70개 나와’는 “경남 통영의 초등생 한아름(10)양을 살해 암매장한 피의자 김점덕(45)은 음란 동영상을 즐겨 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김점덕의 집을 압수수색(22일)해 확보한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파일 218편 중 70편이 음란 동영상, 나머지는 성인소설 등이었다고 23일 밝혔다.”면서 “경찰 관계자는 “음란물에 빠진 김점덕이 충동적으로 범행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음란 동영상을 많이 보다보니 엽기 성범죄에 이르게 됐다는 식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정신과 전문의에 의해 바로 반박됐다.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에서 피해자 나영이 주치의를 맡았던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용의자가 포르노 때문에 이렇게 변했다기보다는 성적인 충동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해 자꾸 포르노를 본 것”이라 주장했다. 사실상 대중문화 콘텐츠의 카타르시스 논리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신 의원의 “화학적 거세가 더 효과적인 대처” 논란에 묻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언론이 ‘폭력적 콘텐트->폭력적 행동’ 논리를 고집하는 까닭

어찌됐건 이번 ‘다크 나이트 라이즈 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다수 저널리스트들은 폭력적 콘텐트->폭력적 행동이란 언론의 구도설정에 의문을 표하며 일제히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 미국총기협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영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구조를 분열시키는 영화들을 가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부턴 더더욱 그랬다.

논픽션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린은 뉴욕타임스 7월21일자 칼럼 ‘살인자에 대해 급히 결론내리지 말라’에서 “필자는 지난 10년 간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연구해왔다. 우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있는 듯 여긴다. 그러나 그중 그 어느 것도 진실로 드러난 것은 없다”며 “뉴스미디어는 사건 발생 후 24시간 내에 ‘결론’으로 건너뛰려 한다. 그 결론은 오늘날 대중이 팩트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폭력적 콘텐트->폭력적 행동 구도는 바로 그 ‘24시간 내 결론’을 위해 미디어가 내미는 간편한 도구에 불과하단 얘기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틸컷.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스틸컷.

어워즈데일리 운영자 사샤 스톤 역시 “미국과 그 외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의 원인은 모두 우울증과 소외감, 그리고 자기혐오가 외부로 표출된 경우였다”며 “우린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들여다보기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길 원한다. 영화의 폭력성을 규제한다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가난, 소외, 사회적 억압, 성적(性的)경쟁, 유전적 요인 등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원인들을 제시하며 무력감과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보다, “영화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영화를 통제하자”고 막무가내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주는 편이 대중으로부터 더 환호받기에 그런 보도들이 봇물을 이루게 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보도과정에서, 미국에서 지난 사반세기 동안 영화 속 일탈행동이 실제 사회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 규명된 경우는 단 한 건뿐이란 점도 함께 밝혀졌다. 폭력영화도 아니라 청춘 풋볼영화인 1993년 작 ‘프로그램’이 그 장본인이었다. 영화 속 풋볼 팀 선수들이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도로 중앙차선 위에 드러눕는 장면을 일련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모방, 그중 2명이 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영화사 측에선 바로 해당 장면을 삭제한 필름으로 교체해 상영에 들어갔고, 이후 비디오/DVD에서도 물론 해당 장면은 삭제된 채 출시됐다.

딱히 사회적 일탈행동이라 보긴 힘들어도, 영화 속 장면이 가장 많은 사회사건을 부른 경우론 ‘타이타닉’ 중 두 연인이 선수(船首)에서 껴안고 양팔을 들어 올리는 유명한 장면이 꼽히고 있다. 영화개봉 후 십 수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를 모방하다 배에서 실족한 사례들이 전 세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 같은 안전사고 차원 장면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 속 폭력과 실제 폭력 사이엔 ‘범죄’라는 거대한 심리적 장벽이 놓여있어, 실질적으로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넘나들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는 이들은 영화가 아니라 껌 종이 그림만 봐도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허구와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반인들 차원에서도 안전사고 관련 장면들은 쉽게 모방심리를 불러올 수 있다. 사회적 일탈이 아닌 개인적 일탈로 간주되는 부분에 있어선 사실상 심리적 장벽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정신이상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껌 종이 그림부터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인들을 계몽하기 위해 선수(船首), 난간, 계단, 옥상 등에서 안전사고 유발 장면들을 통제할 것인가. 공포와 불안이 아닌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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