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표현자유 위축”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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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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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 ‘소녀 알마’ ‘줄탁동시’에 사실상 상영불가 등급

스크린 와이즈 제공
스크린 와이즈 제공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국내 영화와 수입 영화에 잇따라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등위는 최근 노르웨이 영화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사진)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소녀 주인공 알마의 성적 고민과 성장기를 담은 이 영화의 성기 노출 장면과 성적 표현의 수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지난달 영등위는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동성애 영화 ‘줄탁동시’에 대해서도 같은 등급을 부여했다. 현재 국내에는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상영하는 전문 영화관이 없으므로 이 등급의 부여는 ‘상영 불가’를 의미한다.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10개 단체는 ‘줄탁동시’의 판정과 관련해 8일 성명서를 발표해 영등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우선 제한상영가 판정 기준의 모호함을 지적한다. ‘박쥐’(2009년), ‘박하사탕’(1999년) 등에도 성기 노출 장면이 나오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18세 이상’ 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등위는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성기 노출이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 수많은 작품과는 달리 ‘줄탁동시’는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성적 행위를 묘사한 장면을 담고 있다고 판단돼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기준의 모호함을 이유로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바 있지만 아직 제도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9년 성치료 상담사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영화 ‘숏버스’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이후 소송을 제기했고 영등위가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판결을 받아 ‘18세 이상’으로 개봉했다.

영등위는 등급분류 기준에서 제한상영가 영화에 대해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해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는 영화’로 규정하고 있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는 “등급분류의 기준이 위원들에 따라 달라지는 게 문제다. 제도에 자의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영상물의 등급 판정을 의무로 규정하고 영등위를 정부가 운영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은 영화인이 주축이 된 민간 자율기구가 등급을 분류한다. 현재 영등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되며 영등위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황철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 역량이 성숙한 만큼 영화적 표현의 판단 문제는 시민의식과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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