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쌍둥이 감독 김곡-김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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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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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같이 춤추는 소녀들 보면 무섭지 않나요?”

9일 개봉하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로 상업영화에 도전하는 쌍둥이 감독 김곡 김선. 수염을 기른 사람이 ‘곡 감독’, 뒤에 있는 이가 동생 ‘선 감독’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9일 개봉하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로 상업영화에 도전하는 쌍둥이 감독 김곡 김선. 수염을 기른 사람이 ‘곡 감독’, 뒤에 있는 이가 동생 ‘선 감독’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곡 김선 쌍둥이 감독(33)은 ‘아이돌이 무섭다’고 했다.

“언젠가 소리가 제거된 상태의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어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춤을 추는데, 예쁘면서도 그에 비례해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죠.”

촬영장에선 ‘곡 감독’과 ‘선 감독’으로 불리는 이들이 올여름 내놓은 영화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9일 개봉). ‘핑크돌즈’라는 4인조 걸그룹 멤버들이 서로 ‘메인’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 석연찮은 사고를 당한다는 내용의 공포 영화다.

두 감독은 연세대 재학 시절부터 독립영화를 10편 넘게 만들어왔고 ‘방독피’(2010년) ‘세 번째 시선’(2006년) ‘뇌절개술’(2005년) 등을 내놓은 인디계 실력파 감독들이다. ‘자본당 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2003년)와 ‘반변증법’(2002년)으로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해온 이들이 첫 상업영화의 소재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상품인 아이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부조리를 이야기하려면 그 중심부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아이돌뿐인 세상이죠.”(곡)

“아이돌이야말로 노조가 필요해요. 노동 강도가 숨쉴 수 없을 만큼 ‘빡셉니다’. 하루 2시간만 자고 강행군을 해야 하죠. 음원 차트 상위를 차지하려는 압박만큼 소속사 대표에게 잘 보여야 하는 스트레스도 심하고요.”(선)

핑크돌즈 멤버들은 무대 중앙 자리를 놓고 상욕을 주고받는다. 기획사 대표는 수시로 소속사 가수의 뺨을 때리고,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입원한 멤버를 놓고 스케줄에 차질을 빚을까 쌍심지를 돋운다. 멤버들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하는 남자 스폰서도 등장한다.

시나리오를 쓴 곡 감독은 “영화가 담고 있는 모습은 실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아이돌을 취재하다 이 이상의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면 영화가 정말 하드코어로 갈 것 같아 멈췄다”고 말했다.

대개 공포 영화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도망갈 곳 없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관객의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화이트’의 주인공들은 탁 트인 무대 위에서도 충분히 섬뜩함을 전달한다.

“주인공들이 팬들의 시선에 갇혀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아이돌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은근히 그들의 소멸을 원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팬들은 아이돌을 가두는 벽이에요.”(곡)

영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포스터.CJ E&M 제공
영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포스터.CJ E&M 제공
형제 감독의 본명은 김병준과 김병선. 일란성 쌍둥이지만 직접 만나보니 외모도 성격도 달랐다. 형은 휴대전화에 핑크 돼지를 액세서리로 달고 나왔고, 다정하고 수다스러웠다. 형보다 3분 늦게 태어난 동생은 눈에 장난기가 덜한 것이 오히려 형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1997년 연세대 재료공학과와 물리학과에 입학한 형제는 군대를 다녀와선 각각 철학,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나란히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런데 왜 영화였을까.

“영화에 간택당한 거예요. 운동권은 생각이 굳어 있고, 비운동권은 생각이 없는 양 극단의 캠퍼스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시기였죠.”(곡) 이후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어왔다. ‘화이트’의 경우 형이 촬영과 콘티를, 동생이 배우들의 연기 춤 노래 헤어를 맡았다.

쌍둥이지만 독립한 후로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상암동에 따로 산다. 촬영장에서 싸우다 화가 나면 서로 “바지도 벗긴다”는데 앞으로도 영화는 함께 만들 계획이다. 형은 “외롭지 않아서”라고 했고, 동생은 한참 생각하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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