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연 조지 6세, 관객지갑도 활짝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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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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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수상작=흥행부진’ 깰지 관심

《‘오스카의 무덤’ ‘아카데미의 늪’….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들의 국내 흥행 성적을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표현들이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은 재미 없을까 봐 피한다’는 관객들까지 생겨났다. 17일 개봉하는 ‘킹스 스피치’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오래된 오스카의 저주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킹스 스피치는 지난달 27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비록’ 작품상 수상작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위트와 유머까지 흥행요소를 고루 갖췄다는 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 스러져 간 오스카의 영화(榮華)

“더 더 더 더….” 영화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가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결국 연설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사 그랑프리 제공
“더 더 더 더….” 영화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가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결국 연설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사 그랑프리 제공
‘양들의 침묵’(1992년) ‘브레이브 하트’(1996년) ‘타이타닉’(1998년) ‘글래디에이터’(2001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4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들은 국내에서 수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끝나면서 ‘오스카의 저주’가 시작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 작품상 수상작인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국내에서 73만8000명의 관객만을 모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2006년 수상작 ‘크래쉬’의 흥행 성적은 14만7000명으로 더욱 초라하다. 이후 △2007년 ‘디파티드’ 57만2000명 △2008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6만3000명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111만8000명 △2010년 ‘허트 로커’ 17만4000명 등 역대 작품상 수상작들은 저주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최근 6년간 1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유일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몇 년 전부터 아카데미가 칸, 베니스 등 유럽 영화제를 의식해 예술성 위주로 작품상을 주는 경향이 생겼다. 이에 따라 국내 관객들 사이에 ‘아카데미상 수상작은 재미없다’는 편견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 킹스 스피치, 이래도 안 볼래?


킹스 스피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스토리에 배우들의 호연이 빛난다. 양수겸장, 총 들고 칼 찬 격이다. 여기에 감칠맛 나는 유머까지 풍성하다.

주인공 조지 6세 역의 콜린 퍼스는 ‘맘마미아’ ‘러브 액츄얼리’의 로맨틱 가이 분위기를 털어내고 관객의 속을 터지게 하는 말더듬이 왕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베테랑 배우 제프리 러시는 괴짜 언어치료사 로그 역을 맡아 왕과 티격태격하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는 근엄한 왕에게 마음껏 욕을 하게 하고, 춤을 추며 말을 하도록 ‘강요’하며 웃음을 유도한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장면도 이어진다. 왕은 (왕세자가 아니었던) 어릴 적 유모가 밥을 굶기며 학대해 말을 더듬게 됐다고 로그에게 고백해 ‘아!’ 하는 탄성을 이끌어낸다. 왕이 마지막 연설을 성공리에 마치는 장면에서는 영화 속 영국인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줄거리도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잘 아는 집안의 오래지 않은 이야기’라는 친근감을 준다.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엘리자베스 여왕의 큰아버지)의 ‘세기의 스캔들’이 배경에 깔려 얼핏 낯설 수 있는 역사적 배경도 가깝게 다가오게 한다.

조지 6세가 약점을 극복한 뒤 전쟁 속의 국민을 하나로 묶는다는 줄거리는 오늘날에도 감동이 결코 덜하지 않은 데다 가족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 교육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11월 26일 미국에서 개봉해 1억2300만 달러(약 1370억 원)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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