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 피플] 유주완 “밤새 컴퓨터와 씨름…학교서 잠 보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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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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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버스’ 앱 개발자

출시 2년째에도 100위권 인기앱
아이폰 버그 지적으로 또 유명세
천재냐고요? 단지 운이 좋았죠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유주완 군이 자신이 만든 ‘서울버스’ 앱이 담긴 아이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유군은 프로그래밍을 하느라 지나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나머지 손가락 마디가 휘어진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
유주완 군이 자신이 만든 ‘서울버스’ 앱이 담긴 아이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유군은 프로그래밍을 하느라 지나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나머지 손가락 마디가 휘어진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지난 겨울. 부서 회식을 마친 회사원 A씨는 코트 속을 파고드는 칼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 ‘혹시나 막차가 끊어졌나’ 걱정하며 얼은 볼을 싸매던 A씨는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서울버스’ 앱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전화로 정류장 이름을 검색하자 기다리는 버스의 현재 위치와 도착 시간이 나타났다. A씨는 2분 후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버스에 오르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스마트폰 사용자 필수 앱(어플리케이션)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서울버스’ 앱은 누가 만들었을까.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개발자는 유주완(19)이란 젊은이다. 2009년 경기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에 심심풀이로 만든 ‘서울버스’는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순식간에 1위에 오르더니 수 주 동안 수위를 지켰다. 출시된 지 햇수로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 앱스토어 무료어플 100위권 내에 머물며 스테디셀러로서의 힘을 발휘 중이다.

유주완군은 ‘서울버스’ 앱 덕분에 지난해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언론과 주변의 관심을 받으며 유명인사가 됐고, 연세대학교 글로벌융합공학부 IT명품인재 수시전형에 합격해 3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는 행운을 잡았다. 연말에는 환경재단이 매년 발표하는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에 선정됐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세계개발자대회(WWDC)’에 참가했고, 이 자리에서 애플 관계자들에게 아이폰 운영 체제의 버그를 지적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보면 언뜻 천재의 냄새가 나지만 본인은 정작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양했다. “나는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나 정도 하는 친구들은 많다”라고 했다.

유주완 군은 컴퓨터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것도 대충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라 카운터, 게시판, 로그인 기능 등이 들어간 제대로 된 홈페이지였다.

“언제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나”라고 물으니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걸음마도 떼기 전에 집에 있는 컴퓨터 전원버튼을 갖고 놀았다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의 컴퓨터를 켜고 중요한 파일을 삭제했다가 난리가 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유군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진 중학교 부터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고1 때 반에서 3등 수준이었던 성적은 고3 때는 중간 정도에 불과했다. 대학은 아예 포기했다. 매일 밤 컴퓨터 프로그램과 씨름하다 보니 정작 학교에서는 잠만 잤다. 점심도 거르고 잠을 잔 적도 많다.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았나”하니 “맞으면 그 시간은 안 자는 거죠”했다.

컴퓨터 탓에 손해를 본 것은 공부만이 아니다. 잠만 자다보니 친구들과 사귈 기회가 없었다. 유일하다시피 했던 친구 한 명은 서울버스 앱이 뜰 무렵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군은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는 점이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서울버스’ 앱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전 지역의 버스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이다.
‘서울버스’ 앱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전 지역의 버스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이다.

● ‘서울버스’앱 유명세…공부 필요성 절감

‘서울버스’ 앱 이후 유군은 유명인사가 됐다. 주변의 기대도 달라졌다. 부담감도 커졌다.

“지워야죠. ‘서울버스’에 연연하면 절대 그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없으니까요.”

중·고교시절 공부와 담을 쌓았던 유군은 “지금 이 순간처럼 공부를 하고 싶던 때가 없었다”라고 했다. 유명해진 덕에 방송, 기업체 등에 불려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그 때마다 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별별 경험을 다 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교육의 기반은 무엇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군은 ‘서울버스’ 이후 ‘나는 기본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대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라는 불안도 느꼈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던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을 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해 주신 말씀 중 ‘어린 나이에 너무 관심을 받으면 망한다’라는 부분에 공감합니다. ‘서울버스’는 운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의 유주완은 깨끗이 잊고, 새롭게 출발할 겁니다.”

그는 언젠가 사람의 생활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19세의 젊은 혁명가를 미래로 나아가게 해 줄 그의 ‘버스’는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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