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놈놈놈’ ‘박쥐’ 이어 ‘칸’의 부름받을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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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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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들여다보는 칸, 올해는 어떤 한국 영화가 갈까

지금 영화계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영화계 최대의 축제 칸 영화제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레드 카펫과 여배우들의 이브닝 드레스로 기억되는 칸은 사실 영화 비즈니스가 가장 치열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매년 5월 프랑스 남부의 이 작은 휴양도시에는 전 세계 영화계 종사자들이 몰려든다. 한 해의 계획과 수확을 동시에 결정하기 위해서다. 감독들은 떨리는 가슴으로 신작을 선보이고 배우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제작사와 투자사는 차기 프로젝트를 찾고 배급사는 하반기 라인업을 결정한다. 가장 많은 업계 종사자들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정보는 많고 이야깃거리는 넘친다. 칸은 전문가들의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가들을 위한 영화제이다.

이토록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곳이기에 칸의 라인업은 늘 중요한 관심사이다. 특히 감독들의 칸 진출여부는 국제무대에서 그 영화의 성공여부(성공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다. 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이창동 '시' 홍상수 '하하하'… '칸 패밀리'의 귀환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 포스터. 포스터의 로고를 이 감독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 포스터. 포스터의 로고를 이 감독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한국 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 부문에 첫 진출한 이후 매년 칸에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후 '취화선' '올드 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밀양' '괴물' '박쥐' 등 많은 작품들이 주목을 받거나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 칸을 통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칸 패밀리'도 생겨났다. 특히 올해는 이들 중 대다수의 감독들이 칸을 목표로 신작을 준비 중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물밑 접촉이 활발한 상황이다.

우선 칸으로의 진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시'이다. '박하사탕' '오아이스' '밀양' 등 작품마다 인간 내면에의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던 그의 신작인 만큼 '시' 역시 기본적으로 또 한편의 수작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창동 감독은 설경구 문소리 전도연 등 작품마다 캐스팅에 탁월한 혜안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 감독의 선택이 1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1세대 트로이카 배우 윤정희라는 점 역시 이 작품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요소이다.

게다가 이 감독은 이래저래 칸과 인연이 깊다. 2007년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따냈고 지난해에는 심사위원을 지냈다. 또 제작자로 참여한 신인 감독의 데뷔작 '여행자'가 '특별상영' 섹션에서 동시에 상영되기도 했다. 칸이 배려할 수밖에 없는 VIP 급 패밀리여서 올해도 가장 먼저 칸의 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유력시 되는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夏夏夏)'이다. 홍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등 이미 두 편의 영화가 경쟁부분에 초청 받은 데다, 지난해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감독주간에서 상영돼 대표적인 한국의 칸 패밀리 중 하나로 꼽힌다.

'하하하'는 홍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김상경이 영화감독으로, 유준상이 영화평론가로 등장하는 또 한편의 '영화 속 영화이야기'다. 예지원 김영호 등 홍상수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등장하고 문소리 김강우 김규리 윤여정 등 무게 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 빛나는 배우들의 향연을 보는 기대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더구나 홍 감독은 독특한 영화 색깔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감독이다. 그 동안 칸의 경쟁부분에 두 번이나 진출했으나 아직 한번도 수상은 하지 못했기에 그의 재도전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 '칸의 여왕' 전도연의 복귀작 '하녀', 칸 진출이 목표 '카멜리아'

전도연은 영화 '하녀'에서 이혼 후 상류층의 하녀로 취직해 주인 남자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는 ‘은이’ 역을 맡았다. '하녀' 중 한 장면.
전도연은 영화 '하녀'에서 이혼 후 상류층의 하녀로 취직해 주인 남자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는 ‘은이’ 역을 맡았다. '하녀' 중 한 장면.

칸의 여왕 전도연이 복귀하는 '하녀'도 빼 놓을 수 없다. 고(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이 작품에는 전도연과 이정재가 각각 하녀와 상류층 주인남자로, 서우가 그의 아내로 출연한다.

이 영화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오래된 정원' 등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며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당시의 사회상, 여성의 욕망, 가족 내의 갈등과 권력관계 등을 파격적으로 다루며 화제가 됐던 원작이, 반세기가 지난 현재 재능 있는 후배 감독의 손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날 지 주목된다.

또한 '밀양'으로 3년 전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의 연기 변신 또한 뜨거운 화젯거리다. 전도연은 이혼 후 상류층의 하녀로 취직해 주인 남자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는 '은이' 역을 맡았다. 최근 그의 도발적이고 치명적인 팜 파탈로서의 모습이 담긴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하녀'는 상반기 중 가장 기대되는 한국 영화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후반 작업 중이며 올해 칸 영화제 개막 바로 다음날인 5월 13일 개봉한다.

마지막으로 칸의 콜을 기다리는 영화로는 '카멜리아'가 있다. 이 작품은 일본의 유키사다 이사오, 한국의 장준환, 그리고 태국의 위싯 사사나티엥 등 아시아의 유망한 세 감독이 참여하는 옴니버스 영화이다. 장준환 감독편에 강동원과 송혜교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데 이어, 설경구 김민준 일본의 요시타카 유리코 등 스타 급 배우들이 각각의 에피소드에 캐스팅되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올해 칸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더욱이 해외 영화계와의 네트워크가 두터운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제작지휘를 맡았기에 칸 진출 가능성이 더욱 높다. 부산이라는 국내 도시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다국적 프로젝트가 올해 칸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 '놈놈놈' '박쥐' '마더'의 영광 이을 작품은?

'가족의 탄생'을 연출했던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칸 진출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늦추어진 제작일정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문정숙, 신성일이 출연했던 고(故) 이만희 감독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2007년 '색.계'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탕웨이'라는 여배우의 출연으로 더욱 기대를 모았기에 아쉬움이 크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 역시 촬영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면서 경쟁에서 하차했다.

최근 한국 영화의 해외 배급을 하는 한 영화사의 대표는 "이제는 제작비의 90% 이상을 국내 판권 수익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이 많이 위축됐다는 말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도 원인이겠지만 한 때 비정상적인 과열양상을 보였던 한국 영화에 대한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칸이라는 프리미엄에 힘입어 유럽과 미주 전역으로 수출됐다. 앞서 그 전해에 초청받았던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역시 칸을 계기로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개봉됐다. 독보적인 산업적 파급력을 가진 칸에의 진출 여부가 올해 유난히 궁금해지는 이유다.

오는 5월 12일 개막하는 칸 영화제는 지난 26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후드'를 개막작으로 발표하며 본격적인 행사준비에 들어갔다. 제63회 칸 영화제에서는 과연 몇 편의 한국영화를 보게 될까.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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