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고토 마키의 엄마는 왜 자살했나?

  • Array
  • 입력 2010년 1월 28일 14시 10분


코멘트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토 토키코 씨의 생전 모습.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토 토키코 씨의 생전 모습.
23일 밤 10시 55분 경 일본 도쿄 에도카와(江戶川) 구의 한 3층집. 중년 여성이 이 주택 3층에 있는 방 창가에 올라섰다. 곧이어 이 여성은 창가 아래쪽 도로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쿵!" 하는 크고 둔탁한 소리가 늦은 밤 조용하던 동네를 깨웠다. 같은 집에 살던 젊은 여성이 놀라서 창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건물 아래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구급차가 출동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쓰러진 여성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주민들은 처음 신고를 했던 젊은 여성이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중년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된 뒤 24일 새벽 사망했다.

곧 경찰과 취재진이 현장에 몰려들면서 동네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시작했다. 사망한 여성은 일본의 인기 여가수 고토 마키(25)의 어머니 토키코 씨(55)로 밝혀졌다. 어머니의 시신을 처음 보고 신고한 사람은 고토 마키였다.
일본의 인기 여가수 고토 마키가 2006년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 최근 일본에선 그녀의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의 인기 여가수 고토 마키가 2006년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 최근 일본에선 그녀의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을까

23일 오후 6시 경. 토키코 씨는 평소 즐겨 찾던 집 근처 이자카야(선술집)에 친구와 함께 들어섰다. 그녀는 딸 고토 마키의 브로마이드가 앞에 걸려 있는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처음엔 수다를 떨며 유쾌한 듯 보였다. 토키코 씨는 배를 움켜쥐고 웃기도 했다. 그러나 술이 취하면서 표정이 달라졌고 술자리 분위기도 어두워졌다.

26일 아사히신문을 포함한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자카야 주인은 토키코 씨가 "요즘 죽고 싶네요"라며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이유를 묻자 "아들도 그렇고, 가게 문 닫은 것도 그렇고, 몸도… 여러모로 힘들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키코 씨는 그런 말을 하면서 친구와 이날 밤 10시 20분까지 맥주 2병, 소주 2병을 나눠 마셨다. 그녀는 "오늘은 딸(고토 마키)이 전화를 안 하네"라며 쓸쓸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즈음엔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토키코 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유우키(24)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우키는 2000년대 초반 혼성듀오 EE JUMP의 멤버로 활동하며 누나와 함께 '스타 남매'로 불렸다.

그러나 유우키는 2007년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돼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아들의 빈 방에 들어간 토키코 씨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경찰은 그녀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1층 거실에 있던 고토 마키는 이상한 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본 뒤 어머니가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달려갔다. 고토 마키는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일본의 인기 여가수 고토 마키의 어머니 토키코 씨의 생전 모습. 토키코 씨는 아들이 강도상해죄로 수감된 것과 자신이 운영하던 불고기집이 최근 폐점한 것을 속상해 하며 술을 자주 마시고 "죽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인기 여가수 고토 마키의 어머니 토키코 씨의 생전 모습. 토키코 씨는 아들이 강도상해죄로 수감된 것과 자신이 운영하던 불고기집이 최근 폐점한 것을 속상해 하며 술을 자주 마시고 "죽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스타 남매의 어머니…행복한 나날

고토 마키는 1999년 8월 인기 소녀그룹 모닝구무스메의 3기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14세였던 이 미소녀는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매력으로 단숨에 대중의 눈을 사로잡으며 일본의 '국민 여동생'으로 각광받았다.

인기가 하락하고 있던 모닝구무스메는 고토 마키의 가입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녀가 합류한 뒤 처음 선보인 8번째 싱글 '러브머신'은 165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는 1998년 모닝구무스메가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선보인 싱글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이다.

고토 마키는 인기가 높아지면서 모닝구무스메의 다른 멤버와 3인조 유닛 '푸치모니'로 활동하는 한편 솔로 음반도 냈다. '푸치모니'의 음반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2001년 발표한 그녀의 첫 솔로 싱글 '아이노 바카야로'
도 43만장 넘게 팔려나갔다.

고토 마키가 데뷔한지 1년 뒤인 2000년 그녀의 남동생 유우키가 혼성듀오 EE JUMP로 데뷔했다. 재일교포 가수 선임(소닌)과 일본 '국민 여동생'의 남동생 유우키로 결성된 EE JUMP는 발랄
한 컨셉트로 인기를 모았다.

토키코 씨는 하루아침에 스타 남매를 둔 어머니가 됐다. 그녀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며 4남매를 키운 '억척주부'였다. 고토 마키의 아버지는 1996년 등산하던 중 가족들의 눈앞에서 실족사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토키코 씨는 스타 남매의 어머니로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일본 TV 방송이 '고토 마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불고기집'이라고 토키코 씨의 가게를 소개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재일교포 가수 선임과 함께 인기 혼성듀오 EE JUMP의 멤버로 활약했던 고토 유우키가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될 당시 TV 뉴스에 나온 모습. 고토 마키의 남동생인 그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나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고토 유우키는 2007년 절도 혐의로 체포됐으며 자신을 신고한 목격자를 찾아가 폭행한 사건으로 강도상해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재일교포 가수 선임과 함께 인기 혼성듀오 EE JUMP의 멤버로 활약했던 고토 유우키가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될 당시 TV 뉴스에 나온 모습. 고토 마키의 남동생인 그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나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고토 유우키는 2007년 절도 혐의로 체포됐으며 자신을 신고한 목격자를 찾아가 폭행한 사건으로 강도상해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 아들의 방탕한 생활…불행의 시작

유우키는 2001년 매니저와 싸움을 벌인 뒤 팀을 무단이탈해 소속사로부터 근신처분을 받았다. 2002년 복귀해 활동을 재개했으나 미성년자 신분으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이 주간지에 게재돼 다시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EE JUMP는 해체됐고 이미지가 실추된 유우키는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그는 특별한 직업도 없이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돕는 등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한 때 스타로 잘 나가던 아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 토키코 씨 역시 가슴이 막막했을 것이다. 급기야 유우키는 2
007년 10월 절도 혐의로 체포돼 자신은 물론 누나인 고토 마키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안겼다.

유우키는 같은 해 12월 자신을 신고한 사람을 찾아가 보복하기 위해 폭행하고 물건을 훔쳐 강도상해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유우키는 신문과 TV뉴스에 오르내렸고 대중은 고토 마키보다 그녀의 범상치 않은 집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흉악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람의 가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가족이 본인을 대신해 공개적으로 사죄하는 일도 종종 있다.

모닝구무스메를 졸업한 뒤 솔로 가수로 활동하던 고토 마키도 콘서트에서 동생의 범죄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곧바로 소속사에서 나온 뒤 블로그를 폐쇄하는 등 잠시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EE Jump 활동 당시의 유우키.
EE Jump 활동 당시의 유우키.

▶ 죽음으로 끝난 고토 집안의 비극

유우키는 결국 2008년 법원에서 징역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 일은 고토 마키 가족에게 커다란 상처와 충격을 안겼다. 토키코 씨는 한 달에 2, 3차례 교도소에 면회를 가는 등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토 마키도 솔로 가수로 나섰지만 예전처럼 관심을 받지 못했다. 소속사를 이적한 뒤 아이돌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섹시 컨셉트를 내세우는 등 변화에 몸부림을 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스타 남매의 어머니였던 토키코 씨는 가족이 몰락하는 비극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 주위의 차가운 시선 속에 자신이 오랫동안 경영해온 음식점도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

토키코 씨는 남편을 잃은 뒤 과음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아들이 수감되고 식당이 문을 닫은 뒤엔 현실을 잊기 위
해 술을 더 자주 마셨다. 결국 간이 나빠져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술을 끊지는 못했다. 그녀는 최근 들어 집 근처 이자카야에서 자주 술에 취하곤 했다. 토키코 씨는 고토 마키 등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다면서 자살을 암시하는 말도 종종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남매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수감되기 전까지 지내던 빈 방에서 비극을 선택했다. 토키코 씨의 친척들은 그녀가 남편과 아들의 빈 자리를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토 마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자면서 슬퍼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