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넘은 60년대 스타 문희 “이제 내인생을 살겠다”

  • 입력 2009년 10월 15일 2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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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당시 연이은 밤샘 촬영에 너무 지쳤어요. 솔직한 얘기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지요.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60년대 은막의 스타 문희(62·본명 이순임)가 15일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해 그간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1971년 결혼과 동시에 은퇴했던 그가 TV 토크쇼에 나온 것은 38년 만이다.

고(姑)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둔 문희는 은퇴 이후 생활에 대해 "연기를 그만둔 것에 대한 우울증이나 후회는 없었다. 사실 아이들 키우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4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이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문희는 1965년 18세에 데뷔한 6년간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1세대를 이뤘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은 영화를 찍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영화를 나랑 여배우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찍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또 당시에는 의상, 메이크업 등을 배우가 직접 해야 했어요."

그는 "당시에는 연기도 과장됐고, 메이크업도 내가 다 해 너무 촌스럽다. 지금 보면 참 창피하다"며 "요즘도 EBS에서 가끔 옛날 영화들을 방송하던데, 내 작품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애들도 '엄마 연기를 왜 그렇게 못했어?'라고 한다"며 웃었다.

문희는 본인이 좋아하는 출연작으로 '초우' '흑맥'을 꼽았다.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의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미워도 다시 한번'이 대표작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문희는 1993년 세상을 떠난 남편 얘기가 나오자 당시 아픔이 생각나는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남편이 돌아가신 후 2년간 두문불출했어요. 바깥에 안 나갔어요. 그때 애들은 다 외국에 있었는데 큰집에 혼자 있기가 무섭고 싫어 근처에 작은 집으로 이사 가서 살았어요. 그러다 1995년에 주변 권유로 이화여대 최고경영자 수업을 들으며 첫 외출을 했습니다."

그는 "첫 수업 날 취재진이 너무 몰려 수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2년 만에 밖에 나온 40대 후반의 미망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로 자존심이 상했다. 혼자라는 게 부끄러웠고, 내가 남편을 관리를 잘 못해서 남편이 빨리 갔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문희는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남편이 떠난 후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를 알게 됐어요. 집에서 살림만 해서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서 애들한테도 미안했어요. '미안하다. 엄마가 똑똑하지 못해서 도움이 못 된다'는 말도 했는데, 어쩌겠어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다 결혼한 이제는 내가 애들에게 부담을 안 주는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은 했어요."

그는 언론에 잘 나서지 않았던 것에 해서는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 그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또 우리 애들이 굉장히 보수적이라 내가 방송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 피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애들한테 혼날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애들이 하라는 대로 했지만 이제부터는 내 인생은 내가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스크랩하는 것에 취미를 붙여 현재 정식으로 스크랩해놓은 것만 100권이 넘는다고 밝혔다.

"스크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신문 볼 때 가위와 볼펜, 안경을 옆에 둬요.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스크랩한 것이 역사가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잘 가기도 하죠. 많이 읽으니까 깊이 알지는 않아도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다 알아듣기는 합니다."

어느 새 환갑이 넘은 그는 "솔직히 60이 됐을 때는 기분이 좀 안 좋았어요. 하지만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살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근사하게 나이 먹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멋쟁이 사회가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문희는 "아직도 날 기억해주시는 분들께 보답하는 것은 열심히, 멋지게 잘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을 맺었다.

황인찬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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