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이분법시대 지나… 내 영화도 변했죠”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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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온 정치영화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장르 영화에 정치메시지 담는
박찬욱감독 특별한 재능 지녀
영화가 메시지 전달해야 한다면
세상에 질문던지는 작품 바람직

“박찬욱 감독은 장르 영화 속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 감독이 내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뮤직박스’ ‘의문의 실종’으로 잘 알려진 정치 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76)이 부산을 찾았다. 그리스 출신으로 1960∼80년대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영화로 전달했던 그는 프랑스 파리의 영상 정보관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인 그는 전날 만난 박찬욱 감독 얘기부터 꺼냈다. 박 감독은 차기작으로 가브라스 감독의 블랙코미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년)를 리메이크한다고 최근 밝혔다. 가브라스 감독은 “어젯밤 박 감독을 만나 ‘당신이 만들 영화에 어떤 의견도 주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일은 당신이 영화를 완성했을 때 보러 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는 그의 작품 ‘낙원은 서쪽이다’(2008년)와 ‘Z’(1969년)가 월드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다. ‘Z’는 인권운동가 람브라키스의 암살을 통해 1960년대 그리스 극우파의 폭압을 정면 비판한 작품. 1970년대 세계 정치 영화의 흐름을 탄생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가브라스 감독은 ‘특별부서’ ‘의문의 실종’ ‘뮤직박스’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편집상을 받았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Z’와 달리 최근작인 ‘낙원은 서쪽이다’에서 그는 고국 그리스로 떠나 파리로 향하는 밀항선을 탄 주인공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렸다. 전작들에 비해 유머가 짙은 로드무비다.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습니다. ‘Z’를 만들었던 40년 전 세상은 좌파와 우파로 이분돼 있었죠. 좌파들은 낙원을 만들어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천국이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알고 보니 자유롭지 않았어요. 내 영화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원래 영화로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낙천주의자이며 웃음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면 세상을 향해 희망을 주고 싶다며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요즘 ‘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국 그리스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 변했어요. 간단히 말해 유럽화됐죠. 정치적 갈등은 수그러들었지만 젊은 세대는 정치적 격변을 겪었던 과거의 그리스를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40여 년째 프랑스에서 살아온 감독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가브라스 감독은 23세 때 프랑스로 이주한 뒤 소르본대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현재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영화에 눈을 떴다. 한국영화를 꾸준히 보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 시네마테크에서 ‘50편으로 본 한국영화 50년’과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다른 국제영화제와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가브라스 감독은 “아직까지 모든 영화제의 으뜸은 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지는 장점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과 비평가만 영화를 보는 칸과 달리 부산영화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더군요.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내 작품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부산에 오겠다고 생각한 건 무척 좋은 일이었습니다. ‘꼭 다시 오라’는 김동호 위원장에게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부산=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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