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되고 싶어? ‘테리우스’ 따라 해”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여기 이 남자… 드라마 하나로 뜬 별들의 스타일 분석

“스타가 되고 싶어? 그럼 이들을 벤치마킹하라.” 연예계에는 ‘한방 스타’라는 게 있다. 흔한 말로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이들이다. 신인 때 고생이야 없진 않았겠지만 단 한 작품으로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다.

드라마에서 전국을 뒤흔든 스타는 대략 3∼5년 주기로 등장한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년)의 차인표부터 ‘별은 내 가슴에’(1997년) 안재욱, ‘가을동화’(2000년) 원빈의 뒤를 이어 ‘불새’(2004년)의 에릭과 올해 ‘꽃보다 남자’ 이민호가 대표주자다. 여성의 마음을 파고들며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한방 스타’ 다섯 남자의 스타일을 살펴봤다.

○ 외모 재력 권력 외골수…테리우스형 귀공자

잘생긴 건 일단 논외. 드라마 주인공치고 ‘덜 생긴’ 배우를 찾기는 힘들다. 이름조차 낯선 신인이나 그저 그런 배우에서 대박 스타가 되려면 그 이상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 요건은 재력. 그것도 대충 부자여선 안 된다. 차인표는 대형백화점 재벌 2세이자 이사였고, 안재욱은 톱 가수이자 군 장성의 아들이다. 원빈 역시 호텔 소유주 자제고, 에릭 역시 대기업 회장 아들. 최근엔 스케일이 더 커졌다. 이민호가 맡은 구준표는 세계 2위 그룹 ‘신화’를 계승할 후계자다.

성격 면에서는 일단 냉정한 ‘나쁜 남자’여야 한다. 차인표가 약간 덜했을 뿐, 삐딱한 말투로 사람을 우습게 안다. 심지어 원빈이나 이민호는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여자에겐 다르다. 모든 걸 퍼주고, 속내를 다 드러낸다. 여기에 약간의 절차는 필요하다. 처음엔 여주인공을 하찮게 여기다가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내면에 숨은 사랑을 발견한다.

상대 여성들의 캐릭터도 공통점이 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신애라나 ‘별은 내 가슴에’ 최진실, ‘가을동화’ 송혜교, 최근 ‘꽃보다 남자’ 구혜선은 모두 평범 혹은 가난한 처자들. ‘불새’ 이은주는 부잣집 딸이었으나 집안이 망한다. 모두 역경 속에서도 밝고 순수하다.

한마디로 이들은 만화 ‘캔디 캔디’의 테리우스나 영화 ‘귀여운 여인’의 에드워드(리처드 기어)를 빼닮았다. 인터넷소설로 히트 친 ‘귀여니’가 내세운 4가지 법칙, ‘잘생기고, 돈 많고, 싸움 잘하고(권력), 말 잘 듣는’ 요소를 두루 갖춰야 한다. 이문원 드라마평론가는 “소녀적 감수성이 주도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테리우스’는 세월을 초월한 인기 캐릭터”라고 말했다.

○ 아웃사이더에서 현실주의자로 변화

세월이 흐르며 변화도 있었다. 이런 스타는 닭살 ‘멘트’나 ‘제스처’ 필살기도 중요하다. 이 분야 최고는 차인표. 색소폰 연주와 ‘둘째손가락 좌우로 흔들기’는 전국을 강타했다. 이 밖에 “사랑해, 죽을 때까지”(안재욱) “얼마면 돼? 얼마면 널 살 수 있어?”(원빈)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타는 냄새”(에릭) 등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에 비해 이민호는 현실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잘생겼지, 키 크지, 똑똑하지, 돈 많지, 어떻게 내가 싫을 수 있어?”

대신 마음이 오그라드는 듯한 대사는 극중 라이벌 윤지후(김현중)가 도맡았다. “시켜줘, 금잔디 명예 소방관.” “어째서 너 같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은 걸까?”

경제관념도 바뀌었다. 20세기엔 제임스 딘처럼 반항적인 ‘아웃사이더’ 성향이 강했다. 안재욱과 원빈은 끊임없이 집안과 부닥친다. 재벌이지만 돈을 내세우는 걸 싫어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서슴없이 버렸다. 차인표 오토바이는 이 스타일의 대표적 액세서리다.

하지만 최근엔 ‘함께 쓰자’ 스타일이 각광받는다. 가진 걸 여성과 함께 향유하지, 내팽개치진 않는다. 이민호는 “내가 책임질 신화 식구가 몇 명인지 아느냐”며 여주인공과 잠시 헤어질 정도다. 전통적 테리우스 역은 오토바이를 모는 김현중이었다.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엔 단순히 사랑에 모든 걸 거는 형보단 주체성을 지닌 여성에게 맞춰주며 ‘현실’에 순응하는 테리우스가 인기”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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