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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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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삼은 원작 만화 ‘드래곤볼’은 세계 시장에서 3억5000만 부 이상 팔린 히트작. 만화 팬들은 영화 제작을 맡은 저우싱츠(周星馳)가 ‘소림축구’ ‘쿵푸 허슬’ 같은 유쾌한 볼거리를 만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주인공 손오공을 미국인 ‘왕따’ 고교생으로 설정한 이 영화는 시나리오, 연기, 특수효과 등 모든 요소에서 관객을 실망시킨다.
‘우주전쟁’에서 톰 크루즈 아들로 나왔던 저스틴 채트윈(손오공)과 ‘오페라의 유령’으로 전미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에미 로섬(부르마)의 연기는 ‘이 배우가 그 유망주였나’ 의심이 들 만큼 어색하다. “용의 지혜를 배우도록 해” “네 몸 속의 ‘기’를 이용해 봐” 등 상투적 대사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원작의 볼거리였던 ‘천하제일 무도대회’는 초라한 원형경기장 격투로 표현됐다.
특수효과는 컴퓨터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스트리트 파이터’ 등 B급 영화를 연상시키는 수준. 어린이 관객이 좋아할 마법과 보물 탐험이 나오지만 폭력이 난무해 가족영화로 무난하지 않다. 영화 중반 손오공은 괴물들을 칼로 쪼갠 다음 사체를 용암에 던져 징검다리로 쓴다.
그룹 ‘god’ 멤버였던 박준형은 부르마와 느닷없는 로맨스를 펼쳐 이야기 흐름을 끊는다. 액션 장면마다 반복되는 슬로 모션이 저우룬파(周潤發)의 출연을 씁쓸하게 확인시킨다. ‘영웅본색’에서 멋진 슬로 모션 액션을 선보였던 저우룬파는 여성의 엉덩이에 집착하는 천방지축 무천도사로 출연했다.
영화는 보통 개봉 2, 3주 전 시사회를 열어 입소문을 낸다. 하지만 ‘드래곤볼…’ 수입배급사인 20세기 폭스코리아는 개봉 하루 전인 11일에야 언론 시사회를 열었다. “미국에서 프린트를 늦게 보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개봉 전 영화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를 막으려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메가박스에서 이 영화를 본 강성훈 씨(24·군인)는 “영화에 대한 기사나 정보를 찾아볼 수 없어서 호기심이 생겼는데 원작 만화의 좋은 기억만 망쳤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