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the Air]“배경음악 깔아봐”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6분


“배경음악은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이죠.”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종합 편집실에서 배경음악을 삽입 중인 최정윤 음악감독. 조종엽 기자
“배경음악은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이죠.”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종합 편집실에서 배경음악을 삽입 중인 최정윤 음악감독. 조종엽 기자
SBS ‘일요일이 좋다-체인지’ 깔리는 노래따라 분위기 ‘확’

아버지와 아들이 한 무대에 섰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문워킹’(Moon-Walking·달 위를 걷는 듯한 마이클 잭슨의 춤)을 처음 배웠던 아들은 스타가 됐고,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고 싶은 아버지는 특수분장을 한 채 몰래 아들과 ‘댄스 배틀’을 벌였다. 체력이 달린 아버지가 ‘문워킹’을 선보이자,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 순간 “울지∼마아∼울기인 왜 우∼울어∼”(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 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코미디가 돼 버린다. 15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체인지’의 한 장면. 아들은 그룹 ‘신화’의 전진, 아버지는 찰리 박이다. 실제 방송에서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삽입곡 ‘아이 빌리브’가 나왔다. 탄광촌의 광원 아버지가 발레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영화 줄거리와 오버랩 되며 부자간 유대감이 전해졌다.

“사용하는 배경음악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 보이죠.”

14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SBS 탄현제작센터 음향녹음실에서 선곡에 열중하던 최정윤(41) 음악감독의 말이다. 전진이 신화 멤버가 아니라 춤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정체를 가리고 댄스대회에 출전하는 심경을 털어놓는 장면. 최 감독이 박남정의 ‘널 그리며’를 내보내자 전진은 1980년대 춤꾼이 됐다. 이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OST를 깔자 유행에 민감한 청년이 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섹시 백’이 깔리자 열정은 느껴지지만 춤 말고 전해지는 감동이 없다.

결국 선택된 곡은 ‘벤 폴즈 파이브’의 ‘나커렙시(narcolepsy)’. 잔잔한 피아노 소리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진한 마음이 느껴진다. 뒤이어 이승환의 ‘아이에서 어른으로’가 흘러나오자 소박한 인생관도 엿볼 수 있다.

70분으로 제작된 이날 ‘체인지’에는 댄스 경연대회 장면에서 현장음을 그대로 써 평소보다 배경음악이 적게 쓰였는데도 모두 74번 들어갔다. 영화 ‘드림 걸즈’ 삽입곡 ‘아임 루킹 포 섬싱’ 등 5곡을 빼놓고는 모두 다른 곡이다. 수천 장의 음악 CD를 앞에 두고 선곡하는 최 감독은 작업 내내 웃다가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가 머리를 쥐어짜기도 했다.

최 감독은 “‘체인지’는 출연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코너”라며 “배경음악이 출연자의 진심을 왜곡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인지’를 연출하는 조문주(29) PD는 “편집이 잘 안될 때면 배경음악을 먼저 깔아 달라고 주문한다”며 “프로그램 성격의 절반가량은 배경음악이 규정한다”고 말했다.

고양=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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