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 모으려 집까지 찾아갔죠”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데뷔작 ‘내가 숨쉬는 공기’ 들고 내한 이지호 감독

《이지호(35) 감독? 처음 듣는 이름일 수도 있다. ‘2006년 탤런트 김민과 결혼한 재미교포 감독’이라고 해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는 뉴욕 출생으로 웨슬리안대에서 영화와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부터 단편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말에는 한국에서 클래식 음반 PD로, 2000년대 초에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그 시절에 쓴 시나리오가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1월 미국 개봉)인 ‘내가 숨쉬는 공기’다.》

배우 캐스팅만 2년… “할리우드 벽 견고해 힘들어”

앓아 눕자 아내가 촬영장까지 휠체어로 실어 날라

‘행복’ ‘기쁨’ ‘슬픔’ ‘사랑’ 등 네 가지 감정을 주제로 하는 네 가지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만나는 구조의 스릴러.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포리스트 휘터커가 ‘행복’을, ‘미이라’ 시리즈로 잘 알려진 브렌던 프레이저가 ‘기쁨’을, 세라 미셸 겔러와 케빈 베이컨이 각각 ‘슬픔’과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연으로 앤디 가르시아와 에밀 허시까지 나온다.

한국 개봉(9일)을 앞두고 방한한 그를 3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부인 김민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민 4세대로 “할머니도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의 한국어 실력은 인터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신인 감독인데 유명 배우를 많이 캐스팅했다.

“캐스팅이 너무 힘들었다. 2년 넘게 걸렸다. ‘신인 감독과는 일하지 않는다’는 앤디 가르시아는 집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그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시가를 물고 앉아 나에게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에밀 허시도 까다로운 배우였다. 출연은 안했지만 저스틴 팀벌레이크가 ‘기쁨’에 흥미를 보여 그와 점심을 먹은 적도 있었다.”

―많은 배우 중 누가 최고였나.

“포리스트 휘터커. 마음이 우주 같은 사람이다. 촬영할 때는 그가 오스카상을 받기 전이었다. ‘외국에서 지명도가 높지 않다’며 그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밀어붙였다.”(옆에서 김민이 “마지막 촬영 때 모두 휘터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거들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됐나.

“모두 한국에서의 내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반영돼 있다. ‘행복’에는 내가 샐러리맨으로 일했던 경험, ‘슬픔’엔 음악 일을 할 때의 경험이 들어 있다. 그때만 해도 음악 산업에 조폭의 개입이 있었다.”(세라 미셸 겔러는 폭력적인 매니지먼트사에 끌려 다니는 가수로 나온다.)

―제목의 의미는 뭔가.

“이 영화에선 별개처럼 보였던 네 가지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엮인다. 우리는 각자 공기로 숨을 쉬지만 그 공기는 인간 전체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규모 개봉(7개 스크린)했고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좋은 평가도, 나쁜 평가도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에 만족한다.”

―아시아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

“아, 할리우드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내가 유대인이었으면 오히려 더 쉬웠을 것이다. 동양인 신인 감독으로서 배우와 투자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할리우드의 견고한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 데 큰 장벽이 있다. 열심히 하니까 결국엔 다 되더라.”

―촬영 중 병에 걸렸었다고 들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촬영할 때 대상포진에 걸려 눈이 안 보였다. 제작비와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감독을 교체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아내가 ‘일어나!’ 하고 휠체어를 갖고 오더니 나를 촬영장으로 데려갔다. 영화의 후반 30%는 눈이 안 보이는 가운데 소리만 듣고 한 장면 찍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촬영했다. 와이프가 대단히 무섭다.(웃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생각도 있나.

“물론. 나의 꿈이다. 한국의 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팬이다. 특히 박찬욱과 홍상수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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