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표 코미디가 5·18을 만나더니…스포츠 코믹 ‘스카우트’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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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광(光)! 고스톱에선 광 대접 못 받는 미운 오리 새끼. 나는 비광! 광임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

‘스카우트’는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야구선수 선동렬 스카우트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비굴함과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코믹 연기가 일품인 ‘임창정 브랜드’의 영화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순진한 주먹’ 박철민이 읊는 ‘비광 시(詩)’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세영(엄지원)을 놓고 스카우트 이호창(임창정)과 벌이는 사랑싸움에서 밀리자 “나는 쌍피보다 인기 없는 비운의 존재이지만, 당신의 오광(五光)의 영광과 광박의 위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절절하게 노래한다.

‘YMCA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를 만든 김현석 감독에다, ‘색즉시공’ ‘위대한 유산’ ‘만남의 광장’까지 코믹영화의 대가인 임창정,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공포의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조연 박철민까지…. ‘나고야의 태양’ ‘국보급 투수’로 이름을 날린 선동렬 투수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스포츠 코믹영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실제로 임창정은 코리안시리즈 SK와 두산의 경기 때 외야석에서 ‘동주는 내가 스카우트한다’는 피켓을 들고 이색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박진감 넘치는 야구 경기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직 초등학생인 이종범이 서울에서 온 스카우트 호창이 선물해 준 글러브를 받고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이 고작이다. 그 대신 영화의 스토리는 대학 시절 사랑을 나누었다가 7년 만에 만난 호창과 세영에 얽힌 사랑이다. 게다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전 9박 10일간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100% 픽션”이란 말로 피해가려 했지만, 같은 5·18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부담감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선동렬 스카우트를 둘러싼 유쾌한 야구영화가 엉뚱하게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 지식인의 자책감과 콤플렉스가 담긴 영화로 바뀐다. 코미디 영화에 눈물과 감동이 흐르고, 때로는 스릴러와 공포까지 접목되는 것이 유행이지만, 이 영화의 ‘장르적 배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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