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언론인 김일수 씨가 전하는 故신상옥 감독 납북탈출기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1분


필자는 드라마와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영화감독 신상옥 씨와 평생 동지를 잃은 영화배우 최은희 씨의 삶을 오랫동안 남다른 위치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최 씨와 신 감독이 홍콩에서 잇따라 실종된 것은 1978년. 그때 필자는 유일한 홍콩주재 한국 특파원이었다. 8년 뒤 이들이 탈출해 미국으로 갔을 때는 6개월 동안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생한 북한 체험담을 듣고 납북 수기 ‘김정일 왕국’을 펴내도록 도와준 후 인연을 이어 왔다.

이들을 납치하도록 지령한 사람은 당시 북한 노동당 서기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좋은 영화를 만들 욕심으로 선생님들을 모셔왔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신 감독은 필자에게 “김정일은 영화 8000편을 본 대단한 영화광이다. 촬영에서부터 시나리오, 연출에 이르기까지 최고 전문가다”고 귀띔해 줬지만 당시 이런 내용은 책에 싣지 못했다. 책 출간이 금지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최 씨는 홍콩의 관광 유원지 리펄스 베이에서 북한공작원들에게 납치돼 화물선에 실려 8일 뒤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김정일이 부두까지 마중 나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최 선생, 내가 김정일입니다”라며 악수를 청했다.

그때 신 감독은 미국에서 홍콩으로 날아와 “최 씨의 실종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북한에 의한 납치”라고 주장했다. 최 씨를 찾아 홍콩과 동남아 지역을 오가던 신 감독도 7개월 뒤 홍콩에서 사라졌다.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된 신 감독은 북한에서 최 씨를 만나지 못한 채 몇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3년 반 동안이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신 감독은 여러 차례 최 씨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북한 당국이 이를 외면하자 최 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해 탈출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납북 4년여만의 부부 상봉 신상옥 감독(오른쪽)은 납북된 지 4년여가 지난 1983년 3월 6일 김정일(가운데)이 초청한 연회에서 최은희 씨와 재상봉했다. 출처 ‘김정일 왕국’(최은희 신상옥 저)
그는 1983년 2월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풀려나 10여 일 뒤 김정일 초청 연회장에서 최 씨와 4년여 만에 극적으로 재상봉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북한 영화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우리 영화의 질을 높이고 영화인들에게 새 신발을 신겨 달라”며 매년 미화 200만 달러를 지원해 줄 테니 해외에 나가 마음대로 쓰며 영화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신 감독이 만든 첫 작품은 이준 열사의 이야기를 엮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미국 대표들의 반대로 이 열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다는 내용을 부각시켜 김정일을 크게 만족시켰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게 된 이들은 중국과 동유럽, 서유럽을 무대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탈출을 착착 준비했다. 신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뉴저지 주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함흥중학교 친구 H 씨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탈출 계획을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그 친구는 부인과 큰딸을 부다페스트로 보냈다. 이들을 만난 신 감독은 탈출 계획을 설명하고 그동안 북한에서 수집한 사진 및 녹음테이프 등을 전해 주고 이 사실을 미국 당국에 알려 주도록 부탁했다. 신 감독 부부가 1986년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은 H 씨의 사전 연락을 받은 미국 정부 당국의 도움 덕분이었다.

김일수 동아일보 전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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