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들을 납치하도록 지령한 사람은 당시 북한 노동당 서기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좋은 영화를 만들 욕심으로 선생님들을 모셔왔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신 감독은 필자에게 “김정일은 영화 8000편을 본 대단한 영화광이다. 촬영에서부터 시나리오, 연출에 이르기까지 최고 전문가다”고 귀띔해 줬지만 당시 이런 내용은 책에 싣지 못했다. 책 출간이 금지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최 씨는 홍콩의 관광 유원지 리펄스 베이에서 북한공작원들에게 납치돼 화물선에 실려 8일 뒤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김정일이 부두까지 마중 나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최 선생, 내가 김정일입니다”라며 악수를 청했다.
그때 신 감독은 미국에서 홍콩으로 날아와 “최 씨의 실종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북한에 의한 납치”라고 주장했다. 최 씨를 찾아 홍콩과 동남아 지역을 오가던 신 감독도 7개월 뒤 홍콩에서 사라졌다.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된 신 감독은 북한에서 최 씨를 만나지 못한 채 몇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3년 반 동안이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신 감독은 여러 차례 최 씨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북한 당국이 이를 외면하자 최 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해 탈출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 |
신 감독이 만든 첫 작품은 이준 열사의 이야기를 엮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미국 대표들의 반대로 이 열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다는 내용을 부각시켜 김정일을 크게 만족시켰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게 된 이들은 중국과 동유럽, 서유럽을 무대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탈출을 착착 준비했다. 신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뉴저지 주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함흥중학교 친구 H 씨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탈출 계획을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 |
김일수 동아일보 전 편집국 부국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