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출연자가 노예? “해도 너무해”

  • 입력 2004년 5월 13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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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들이닥친 제작진 앞에서 잠이 덜 깬 채 개인기를 구사해야 하는 MC 지망생, 순발력 테스트에서 머뭇거리다 벌칙으로 공중에 매달린 취업 준비생, 아마존에서 핫도그만한 살아있는 벌레를 억지로 한 입 베어 물며 울상 짓는 여자 탤런트.

이달 초 봄 프로그램 개편 이후 KBS2가 출연자를 괴롭히는 가학적 장면들을 잇달아 방영하면서 지난해 4월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강조해온 공영성 강화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익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아온 경제관련 ‘황금의 시간’이 폐지되고 대신 신설된 ‘MC 서바이벌’(토 밤10시)은 10명의 MC 지망생을 놓고 시청자들의 전화투표로 최저득표 후보를 1명씩 탈락시키는 프로그램.

그러나 제작진은 순발력을 테스트한다며 새벽 4시반 후보의 숙소를 기습해 개인기를 요구했다. 후보들이 비몽사몽인 채 당황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고, 잠옷 바람에 얼굴을 가려가며 억지로 개인기를 보여주는 여자 후보도 있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꼴찌를 가려내는 장면. 두 사람씩 계속 비교해가며 꼴찌를 가려내는 모습에 대해 시청자 김종민씨는 “꼴찌를 가려내는 방식의 야만성에 시청하는 사람도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최정은씨는 “비몽사몽인 사람에게 개인기를 시키는 등 변별력이 거의 없는 기준에 맞춰 서열을 매겼다”고 비판했다.

청년 실업자들에게 취업기회를 준다는 취지의 ‘꿈의 피라미드’(일 오전10:50)도 선별과정에서 출연자들에게 가학적 벌칙을 주고 있다. 10명의 후보 중 국민은행 신입사원 1명을 뽑는 9일 방송에서 출연자들은 문제를 푸느라 토끼뜀을 뛰어야 했다. ‘거짓말이 사라진다면’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해 벌칙으로 공중에 매달리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보다 오락적 요소를 너무 가미한 것 아니냐”(장현), “한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하는 프로그램이니 신중해야 한다”(임태준)고 지적하고 있다.

또 ‘도전 지구탐험대’(일 오전8:30)는 2일과 9일 방송에서 여자 탤런트 구자미가 아마존 밀림에서 빨간 개미, 애벌레가 꽉 들어찬 벌집, 바퀴벌레 같은 곤충을 억지로 먹는 장면을 내보내 자사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TV비평 시청자 데스크’에서 “충격적 장면을 문화체험이란 명목으로 내보냈다”고 지적받았다.

방송위원회는 최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방송은 지나치게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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