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보이는 것의 날인'…영화는 본래 육체적인 언어다

입력 2003-12-12 17:14수정 2009-10-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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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부’의 한 장면. 프레드릭 제임슨은 사회적 역사적 관점의 분석을 통해 영화 ‘대부’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며 유토피아적 판타지를 노출시켰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보이는 것의 날인/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남인영 옮김/485쪽 2만5000원 한나래

식인 상어 떼가 평화로운 해변을 급습하자 수영객들이 경악하며 도망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조스’. 말론 브랜도의 카리스마적 이미지가 관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영화 ‘대부’ 시리즈. 잭 니컬슨의 냉혹한 얼굴이 떠오르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18세기 프랑스 화가 와토의 그림과 로코코 회화 같은 영상으로 촛불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큐브릭의 또 다른 영화 ‘베리 린든’. 우아한 영상과 음악이 감동적인 ‘디바’와 ‘사이코’를 비롯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들. 우리에게 낯익은 영화들이 저자 프레드릭 제임슨의 ‘날인(signature)’을 받는다.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미국의 대표적 좌파 인문학자 제임슨은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 가며, 영화 속의 ‘보이는 것들에 대해 꼼꼼히 서명’하고 있다. 그는 이런 영화들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을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활용한 변증법적 프리즘을 통해 설명한다. 이미지 속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이를 다시 역사적으로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제임슨의 영상론은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적”이라는 도발적 언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미 하이데거가 예견한 ‘그림으로서의 세계’가 이제는 상당히 시각적으로 포르노화했고, 세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알몸을 보듯이’ 자신을 응시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이미지를 수집하는 육체로서의 영상이다.

영화는 ‘육체적 경험이고 육체적으로 기억되며 육체의 신경세포 속에 저장’되기 때문에 정신적 사유가 점점 얕아지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상당히 마르셀 프루스트적이다. 제임슨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규명될 수 있다.

이미지의 존재론과 영상미학은 지각의 ‘역사성’을 기초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매개하는 형식 그 자체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지닌다. 사르트르를 전공한 제임슨의 이런 영화 영상이미지 담론은 프로이트, 마르크스, 기 드보르, 아우어바흐, 베냐민, 보드리야르, 라캉, 텔켈 그룹,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방대한 사상과 이론을 관통함으로써 중층적인 분석틀을 짠다. 예컨대 영화 ‘대부’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미학적 형상화와 유토피아적 판타지가 노출되고, 다분히 남아메리카적인 마술적 리얼리즘 영화가 관객의 역사 인식을 통해 시각적 주문(呪文)에서 풀려난다.

제임슨의 이런 시도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예술의 형식과 내용에 상품미학 구조가 은밀히 침윤하면서 예술의 본질인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소멸되고, 전방위적 도구화의 논리가 유희 영역마저 식민화하는 과정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이제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다. 세계와 역사라는 ‘팔랭프세스트’(palimpseste·여러 번 지우고 기록한 양피지)의 정확한 판독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지도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변증법적 문학비평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제임슨의 정치한 영화 분석은 독자(관객)를 지적으로 자극해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하게 할 뿐 아니라, 한국 영화비평 담론의 텃밭을 한층 더 풍성하게 일궈 낼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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