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3월 12일 18시 4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가족의 관계로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 선후배, 혹은 동료가 되어 한 배를 타게 된 영화인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한국영화의 잇단 흥행성공과 더불어 찾아온 제작환경의 변화 속에 그들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오! 해피데이’(제작 황기성 사단)의 제작총지휘를 맡은 황경성 상무와 기획을 담당한 황지용 실장은 삼촌과 조카 관계.
![]() |
황 상무는 ‘닥터봉’ ‘고스트 맘마’ 등 수십편의 히트작을 내놓은 ‘황기성 사단’의 황기성 대표와 ‘황 브러더스’라고 불렸을 정도로 ‘패밀리’ 영화인들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황씨 문중의 영화진출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뉴페이스’ 황지용 실장의 남다른 이력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재무와 회계를 전공하고, 경영정보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 대기업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아버지 황기성 대표의 권유로 영화계에 입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순간에 높은 자리를 꿰차는 ‘새치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모름지기 영화제작은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배우는 것이 정도(正道)라 여기는 황기성 대표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제작환경을 조성한 우수인력이 자신의 아들이라 해도 낙하산 인사는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과거와는 차별화된 경우라 하겠다.
![]() |
‘부자유친’의 힘을 발휘한 영화인들은 이밖에도 많다. ‘서편제’ ‘취화선’ 등을 제작해온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을 제작한 ‘필름지’의 이효승 대표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영화제작의 대물림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춘향전’(1971)과 ‘영자의 전성시대’ 등 한국영화 최다 제작 기록을 보유한 ‘태창엔터테인먼트’의 김태수 회장과 영화 ‘무간도’를 수입한 김용구 PD도 한솥밥을 먹는 부자관계.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대표와 ‘동아 엔터테인먼트’의 이호성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자고 일어나면 유명해지고, 또 자고 일어나면 퇴물 취급을 받기 일쑤인 ‘초스피드’ 경쟁 산업인 영화제작의 세업(世業)은 일반 대기업의 세습(世襲)과는 다르다. 믿음과 신뢰는 물론, 강한 결집력을 발휘해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발전적인 세대교체를 일구어낸다.
![]() |
인맥중심의 인사구조가 팽배한 영화계에서 오히려 확실한 공사구분으로 주위에서 실제 가족이 맞느냐는 엉뚱한 의구심을 사기도 한다. 영화사를 운영하는 한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깍듯이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유행어를 나돌게 한 류승완(감독), 류승범(배우) 형제. 그들이 함께 작업중인 ‘마루치 아루치’(제작 좋은 영화)의 마케팅은 류승완의 부인이자 류승범의 형수인 강혜정 실장이 맡게 된다.
영화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 선보일 차기작 ‘두사람이다’(제작 LJ필름)의 마케팅은 정 감독의 부인 곽신애 실장이 담당해 막강 내조에 나선다.
‘색즉시공’으로 대박을 터뜨린 윤제균 감독은 사촌인 윤상호 감독의 데뷔작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등 맹렬 지원사격 중이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제작자 심재명 대표와 연출자인 그의 남편 이은 이사는 심 대표의 동생 심보경 실장과 함께 ‘아리랑’과 ‘그때 그 사람(들)’을 제작할 예정.
동종 업계에 있다고 꼭 한 작품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재능을 서로에게 보태어준다면 이 같은 금상첨화는 없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어 개개인의 단점은 사라지고 일은 더없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이 갖는 최대 장점이라 하겠다. 가족이라서 특별하고 가족이라서 특별하지 않은 영화인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끈끈한 정을 매개로 영화를 만들어낼 ‘패밀리’ 영화인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심영 <‘KM컬쳐’ 마케팅담당 이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