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길이 5km에 달하는 화성은 규모에 비해 높이는 5m를 넘지 않는다. 전투시 방어에 불리할 정도로 낮은 성곽은 무엇을 의미할까. 창이나 활이 전쟁에 사용되는 주된 무기였을 땐 높은 곳에서 공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화포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화포로 성벽 아래를 공격받으면 성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높은 담은 불리하다. 화성의 성벽이 낮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화성에는 다른 성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공심돈(空心墩)이 셋이나 있다. 공심돈은 전시에 사용되는 장거리 관측소로 위아래로 구멍을 뚫어 바깥 동정을 살필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총포를 쏠수 있게 돼 있다. 각 총구와 포구에 무기를 설치할 경우 공심돈은 한 번에 엄청난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전투요새로 변신하게 된다.
이 밖에도 적의 측면공격을 대비한 적대(敵臺)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는 치(雉) 등 화성에는 조선의 독창적인 성 건축 문화가 곳곳에 녹아있다.
당시 화성에는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이 주둔하고 있었다. 화성방어를 위한 외영에만 3000명이 넘는 군사가 배치되는 등 화성이 병력의 요충지로 부상한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수도 방위의 대안으로 수원을 내세웠던 것이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