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귀하신 몸 vs 고단한 몸 '여인천하' 촬영현장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8시 03분


SBS 사극 ‘여인천하’ 촬영 현장을 가보면, 극중 안방 마님과 무수리 등 신분의 차이가 TV 화면 바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회당 500만원을 받는 강수연과 겨우 3만5000원을 받는 보조 출연자(무수리나 포졸 등)들이 촬영 현장에서도 극중 신분만큼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관광객이 오기전인 오전 8시 경복궁 주차장에는 촬영 장비와 보조출연자들이 탄 대형 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보조출연자들에게 대형 버스는 탈의실 분장실 대기실 등으로 쓰는 다목적 공간이다. 앞에서는 남성 출연자들이 줄지어 앉아 분장사가 수염을 붙여주기 기다리고 버스 뒤켠에서는 여성 출연자들이 한복을 갈아입고 머리 손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강수연은 전용 밴에서 1시간 가량 개인 분장사의 화장을 받고 의상을 갈아입는다. 분장을 마친 강수연은 카메라가 있는 교태전으로 옮겨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의자에 앉아 촬영을 기다린다. 옆에는 코디네이터와 매니저가 서 있다.

이날 첫 장면에서 병졸로 나올 50여명의 보조 출연자는 언제 투입될지 모른 채 하염없이 촬영 현장을 지키고 있다. 무수리들은 추위 때문에 삼삼오오 쪼그리고 앉아 있고.

강수연에게는 여차하면 팬들이 달려든다. 이날도 현장 학습을 나온 중학생들이 강수연에게 몰리자 김재형 PD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NG! 야! 빨리 가서 통제해!”

그 말에 쉬고 있던 보조출연자들이 재빨리 달려가 중학생들을 막는 동안 강수연은 분장을 고쳐잡고 있다.

낮 12시 자경전으로 옮겨 촬영이 계속됐다. 지루해진 무수리와 상궁들은 궁궐 마루에 걸터앉아 졸기 시작했다. 잠을 깬 한 무수리에게 “추운데 잠이 오냐”고 묻자 “5시간씩 기다려 한 장면 찍을 때도 있는데 그 무료함을 달래는 데는 잠이 최고”이라며 “적응이 되면 어느 상황에도 잘 수 있다”고 말한다.

강수연은 이어 한시간 뒤 예정된 촬영을 마치고 현장을 떠났으나 무수리들의 기다림은 계속됐다. 통상 촬영장에서는 주연이 나오는 장면을 서둘러 찍고 이어 무수리나 포졸이 나오는 장면은 나중에 촬영한다.

그러나 한달 꼬박 나와도 100만원 밖에 못 번다는 보조 출연자에게도 꿈이 있다. 이날 처음 나왔다는 유은주씨(30)의 꿈은 영화 제작자.

“지금은 비록 별볼일 없지만 누가 알아요? 나중에 대박을 터트리는 영화제작자가 돼 강수연씨를 캐스팅하는 날이 올지.”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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