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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8월 6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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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1일 밤 8시경 서울 흑석동 중앙대 대학극장. 밖에는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극장 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무대 위 몇몇 조명만 불을 비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킬킬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귀신이 그렇게 쉽게 찾아진단 말인가. 하지만 조금 후 거짓말같이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긴 머리를 한 귀신이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혀를 날름 내밀며….
그녀는 물론 진짜 귀신이 아니다. KBS2 TV 납량특집드라마 ‘도시괴담’(일 밤 10시40분)의 세 번째 작품 ‘악령의 무대’에 귀신으로 분장한 신인탤런트 김수진.
#‘도시괴담’
‘도시괴담’은 영화감독 4명에게 연출을 맡긴 옴니버스식 호러드라마. 카메라만 방송용 디지털 카메라가 사용되고 있을 뿐 촬영과 조명 등 나머지 일에는 모두 영화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5일 첫 방송된 1화 ‘죽은 자의 노래’는 액션스릴러 ‘리베라메’의 양윤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12일 방송될 2화 ‘비명’은 공포영화 ‘가위’의 안병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3화 ‘악령의 무대’의 연출자는 지난해 이미연에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심리스릴러 ‘물고기자리’의 김형태 감독.
#오전11시15분
촬영이 시작됐다. 제작팀은 이날이 ‘악령의 무대’ 첫 촬영이었다. 촬영 내용은 공포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도입부. 심야시간 극장에서 혼자 대본을 연습하던 여배우가 무대 천장에 숨은 귀신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이다.
밤 장면을 낮에 찍는 데다 동시녹음이다 보니 찌는 듯한 더위에 극장 문을 꼭 닫은 채 촬영이 진행됐다. 여기에 조명의 명암 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화면효과를 위해 스모그를 뿌려 실내는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오후2시40분
점심시간도 잊은 채 촬영에만 매달리던 제작진이 점심식사에 들어갔다. 식사 중 1화 ‘죽은 자의 노래’에서 원혼이 된 백제장군 역을 맡은 하리수의 유머감각이 화제가 됐다.
하리수는 가슴에 화살을 맞는 장면에서는 “살살해요, 실리콘 터져요”라는 말로, 컨디션이 나쁠 때는 “저 요즘 멘스 해요”라는 말로 제작진의 폭소를 자아냈다고.
#밤8시
오후 3시20분 경부터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여배우 역을 맡은 박현정의 이마에 핏방울이 떨어지는 장면과, 그녀가 천장을 쳐다보고 비명을 터뜨리는 장면의 촬영을 완료한 것은 밤 8시가 다 되어서 였다.
아침부터 귀신분장 차림으로 극장 주변을 맴돌며 제작진을 깜짝 놀라게 하던 김수진이 드디어 혀를 날름 내밀며 등장했다. 김수진이 공중에서 무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찍을 차례이기 때문.
“너 안에 뭐 입었냐?”
“비키니 수영복 입었는데요.”
“비키니론 어림없다. 반바지로 갈아 입어.”
김수진이 속옷을 걱정한 이유는 곧 밝혀졌다. 굵은 쇠줄(와이어)에 매달린 채 무대 천장에서 출현해야 하는데 사타구니로 와이어가 들어오기 때문.
그녀는 와이어를 등과 사타구니에 장착한 채 매트리스 위에서 들어올렸다 내려지기를 1시간 이상 반복했다. 결국 김수진은 밤10시경 천장으로 끌어올려져 카메라가 무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잡았다.
#밤11시15분
드라마의 도입 부분 촬영을 마친 시각은 밤11시15분 경. 아침 촬영에 들어간지 정확히 12시간 뒤였다.
김형태 감독은 “자정이 다 되니까 정말 극장안 공기가 으스스하게 바뀌는 게 느껴지지 않아”라고 눈을 찡긋한 뒤 다음 장면 촬영으로 넘어갔고, 다음날 오전 6시반까지 밤샘 작업으로 이어졌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