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이 등장하는 영화 7편]개그맨, 내게 웃음을 줘봐!

  • 입력 2001년 3월 21일 18시 28분


<우디 앨런의 선샤인 보이>
3월24일 개봉되는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멜로영화 <선물>은 유명 개그맨을 꿈꾸는 남편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부인의 사랑을 눈물 나는 감성으로 보듬어낸 영화다. 슬플 때도 슬픈 척 할 수 없는 개그맨의 비애를 그린 <선물> 개봉에 맞춰 개그맨이 등장하는 영화 7편을 모았다.

■우디 앨런의 선샤인 보이(The Sunshine Boys)

감독 존 어맨/주연 우디 앨런, 피터 포크, 사라 제시카 파커/1995년

제목만 들으면 우디 앨런의 연출작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할리우드 신파의 전형 <스텔라>를 연출한 존 어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영화다. 닐 사이먼이 각본을 쓴 연극을 허버트 로스가 영화화했고 존 어맨이 다시 그것을 리메이크했다. 왕년의 개그맨 콤비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뭉치게 되는 이야기.

잘 나가던 개그맨 콤비였던 그들은 사소한 마찰로 앙숙이 된 후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를 헐뜯는 사이가 된다.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던 두 사람이 다시 뭉치게 되는 계기는 클락(피터 포크)의 조카 낸시(사라 제시카 파커) 덕분. 크리스마스 방송 특집을 준비하던 그녀는 두 사람을 불러와 멋진 코미디 프로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연출만큼 연기도 잘 하는 우디 앨런이 쇼핑 프로그램 보는 걸 낙으로 삼는 초라한 노인 루이스 역을 맡았으며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 피터 포크가 건망증이 심해진 왕년의 스타 개그맨 클락 역을 맡아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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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1929년 (The Wild Party)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주연 제랄딘 바론, 티파니 볼링, 제임스 코코/1975년

코미디언 패티 아버클의 스캔들은 1920년대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던 대단한 사건 중 하나였다. 개그맨으로서의 생명이 다해가는 걸 느낀 왕년의 스타 패티 아버클(이 영화에선 '졸리 그림'으로 이름이 바뀜)이 파티 도중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남자 친구를 죽였던 엽기적인 사건.

조제프 몬큐어 마치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영화의 원제는 원래 '와일드 파티'였으나 국내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할리우드 1929년>이라는 제목으로 둔갑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뜻하지 않는 시련'을 많이 겪었다. 미국 배급업들이 감독의 허락 없이 영화의 주요 부분을 마음대로 편집해버린 것. 갈가리 찢긴 이 필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훗날 영화를 감독판으로 복원했다. 고풍스러운 영국 귀족 사회의 이야기에 재능을 보여온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한 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 염증을 느껴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을 설립하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진실과 코메디(Funny Bones)

감독 피터 첼섬/올리버 플랫, 제리 루이스/1995년

유명한 코미디언 부자의 아이디어 경쟁과 삶의 숨겨진 비밀을 담은 감동적인 코미디 영화. 오랫동안 존경해왔던 아버지(제리 루이스)가 사실은 아이디어 도둑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 토미(올리버 플랫)는 여태껏 궁금해했던 삶의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는 걸 느낀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친 아버지 때문에 망신만 당한 토미. 그는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코미디의 고장이자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고향 블랙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토미는 아버지가 파커 형제의 아이디어를 훔쳐 스타가 되었으며, 현재 블랙풀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인 잭 파커가 자신의 의붓 형제라는 걸 알게 된다.

토미와 아버지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즈음 영화는 한 차례 즐거운 코미디 무대를 풀어놓는다. 실제인지 가상인지 헷갈리는 이 이상한 코미디 무대는 영화의 갈등 구조를 한 번에 녹여 버리는 당의정같은 것이다.

토미의 아버지로 등장한 제리 루이스는 실제 할리우드의 인기 코미디 배우. <코메디의 왕>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날 스타로 만들어달라"고 협박했던 유명 코미디언이 바로 그였다.

■코메디의 왕(The King Of Comedy)

감독 마틴 스콜세지/주연 로버트 드 니로, 제리 루이스/1983년

인기 코미디언이 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건달에 불과했던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 니로)에겐 더욱 더. 자신에게 굉장한 코미디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루퍼트 펍킨은 무작정 유명 코미디언 제리(제리 루이스)를 찾아가 "나를 스타로 만들어 달라"고 안달한다.

하지만 제리는 그를 만나주지 조차 않고 도시에만 가면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질 거라 믿었던 그는 절망한다. 제리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기를 몇 차례. 제리가 끝끝내 그를 만나주지 않자 루퍼트는 급기야 제리의 여성팬을 이용해 엽기적인 납치극을 벌인다.

"날 데뷔시켜 줄 거야, 말거야?" 영화의 마지막은 루퍼트가 자신을 코미디의 왕(King)이라 지칭하며 토크쇼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쇼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을 풍자한 이 코미디 영화는 제리 루이스와 로버트 드 니로 콤비의 명연기 덕분에 더 빛을 발했다.

■짐 캐리의 맨 온 더 문(Man On The Moon)

감독 밀로스 포먼/주연 짐 캐리, 대니 드 비토, 커트니 러브/1999년

한때 반짝 인기를 모았으나 갖가지 괴벽 때문에 사람들의 눈밖에 나고 만 불운한 스타 앤디 카우프먼(짐 캐리). 34세에 요절한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드마라틱했다.

3류 클럽을 전전하다 유능한 매니저 조지 샤피로(대니 드 비토)를 만나 기적적으로 인기 코미디언이 된 그는 '악의 코미디언'이라 불릴 만큼 이상한 코미디를 일삼았다. 여성들을 괴롭히는 레슬링 쇼를 선보이거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난동을 피웠던 앤디 카우프먼. 그는 결국 사람들의 미움을 사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퇴출당했으며 암에 걸려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인물은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꼽히는 짐 캐리. 원래 앤디 카우프먼의 열혈 팬이었던 그는 이 영화의 주연을 자처하며 카우프먼 연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앤디 카우프먼과 짐 캐리의 생일이 똑같다는 점. 앤디 카우프먼은 49년 1월17일생이며 짐 캐리는 62년 1월17일생이다.

■형사 매드독(The Maddog and Glory)

감독 존 맥노튼/주연 로버트 드 니로, 우마 서먼, 빌 머레이/1992년

글로리(우마 서먼)가 공원을 산책하며 말한다. "인생이란 성공을 기다리는 사이 다 지나가버리죠." 그녀의 한마디는 <형사 매드독>의 주인공들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매드독(로버트 드 니로)은 사진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소심한 형사가 되어 버렸고, 사사건건 매드독을 괴롭히는 프랭크(빌 머레이)는 원래 멋진 개그맨이 되고 싶었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3류 나이트 클럽 개그맨 겸 조직의 보스가 되어버렸다.

전적으로 개그맨의 비애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일류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마음만큼은 절실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자신을 굉장한 유명인사로 착각했던 프랭크는 결국 마지막에 "그래, 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3류 개그맨일 뿐이야"라며 자신의 처지를 시인한다. "성공을 기다리는 사이 인생이 다 지나가버렸음"을 그 역시 느낀 것이다.

■개그맨

감독 이명세/주연 안성기, 황신혜, 배창호/1988

<형사 매드독>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개그맨>의 주인공 역시 '잡히지 않는 꿈'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지만 실제로는 카바레 3류 개그맨에 불과한 이종세(안성기), 멋진 영화배우를 꿈꾸고 있지만 실제로는 쓰러져가는 이발소에서 면도날이나 휘두르고 사는 문도석(배창호).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건 '무지가 낳은 용기'뿐이다.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은행털이가 된 그들의 엽기행각은 웃을 수도 울 수 없는 블랙코미디의 전형이다.

개봉 당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 영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현재 한국의 컬트영화로 남아있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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