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청률 집착 '허준'서 교훈 사라졌다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29분


지난해 12월초 시작된 MBC 시대극 ‘허준’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 2월초 이후 시청률이 계속 50% 이상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만큼 최근 ‘허준’의 내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질책도 매섭다. 최근들어 MBC 홈페이지에 실리고 있는 지적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허준’이 극의 밀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드라마적 재미만 겨냥한 탓에 초기에 신선했던 ‘교훈적 내용’이 자취를 감췄다는 지적이다. MBC가 그동안 자랑해온 ‘허준’의 ‘공영성’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자들의 지적은 대부분 극의 전개가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으며 황당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 “드라마 전개가 늘어졌다”(이윤심) “너무 늘여서 허무맹랑한 스토리가 많다”(박혜영) “허준을 경원시하는 모리배들의 모략과 계략이 극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조윤성) 등이다.

시청자들의 지적처럼 드라마 ‘허준’은 최근들어 ‘큰 바위 얼굴’의 전형을 제시하겠다는 당초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 드라마적 재미와 의미의 절묘한 배합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이제는 그같은 미덕은 사라진듯하다. 5월 중순 방영한 49∼52회를 살펴보자.

우선 드라마 ‘허준’은 곤경에 빠진 허준이 의술로 기사회생하는 전개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 52회 방영분에서 밀수 전력이 탄로나 감옥에 갇힌 허준은 53회(22일)에서 공빈 김씨(박주미 분)의 병을 고쳐주면서 사면받는다.

교훈적 요소의 상실은 ‘허준’에게는 치명적이다. 최근에는 환자를 정성으로 대하는 명의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50, 51회에서 황해도 전염병 환자를 치료할 때 한 죄수의 말을 그대로 믿고 처방을 내리는 대목도 나온다. 특히 예진(황수정)과 허준의 ‘이상한 관계’를 부각시키는 줄거리에 대해 김희진씨(31·서울 중곡동)는 “마치 ‘불륜’을 미화하는 것 같아 가족 드라마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선조의 후궁인 공빈과 인빈(장서희)을 둘러싸고 어의들이 벌이는 궁중 암투도 종래 사극에서 되풀이돼 온 기법에 불과하다.

‘허준’이 허점을 드러내는 까닭은 방영 기간이 3개월이나 엿가락처럼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탓에 허준이 과거 밀수 경력으로 곤경을 당하는 이야기가 2회에 걸쳐 방영되는 등 매 회 한 두 소재로만 채워지다보니 극의 전개가 지루하거나 무리해진다.

KBS의 한 드라마 PD는 “‘허준’처럼 시청률이 높을수록 연출진이 작은 폭의 추락도 두려워해 ‘안전판’을 되풀이하는 경향이 짙다”며 “무리하고 느슨한 전개는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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