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신설프로 '개그사냥' 서승만, 김용옥 판박이 흉내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33분


도올 김용옥
도올 김용옥
“The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도올 김용옥의 열풍이 이제는 코미디로 옮겨졌다. 도올이 지난달 24일 EBS ‘노자와 21세기’를 마친 직후인 27일 MBC가 신설한 오락프로그램인 ‘개그 사냥’(일 오후1·00)의 ‘놀자의 21세기’ 코너가 눈길을 끌고 있는 것. 개그맨 서승만이 도올의 노자 강의를 판박이처럼 흉내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중국 청나라식 검은색 도포는 물론, 손을 파르르 떠는 것으로 상징되는 격정적인 몸짓과 가끔씩 쇳소리를 내는 말투(억양)도 흡사하다. 도올의 녹색 칠판 대신 화이트 보드를 사용하지만 글씨를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써올라가는 것도 닮았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면 도올의 퍼스낼리티마저 모방한다. 상대적인 ‘학문적 내공’의 넘침 때문인지 부족 때문인지 한글 영어 한문을 자유자재로 혼용하는 도올 특유의 ‘현학적’ 필담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서승만은 최선을 다해 ‘아는 체’ 한다. 아름다움에 관한 ‘담론’을 펼 때면 ‘美’자나 ‘Beauty’라는 단어를 반드시 적고, 만족을 논할 때 한글로만 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滿足’이나 ‘Satisfaction’을 들먹인다. 더욱이 한자로 된 짧은 문장은 대부분 중국 발음으로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것도 도올을 빼다 박았다. 객석의 박장대소가 집중되는 것은 이런 대목이다.

물론 ‘놀자의 21세기’는 코미디인만큼 도올이 노자 강의를 통해 보여줬던 동서양을 넘나드는 지적 상상력이나 청중을 사로잡는 자신감은 없다. 하지만 ‘컨텐츠’를 쏙 뺀 ‘도올식’ 포맷 자체가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충분히 사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찍이 1990대 초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의 ‘만담’ 식 어투가 최병서 등 개그맨들의 소재가 됐지만 이는 성대 모사에 그쳤다. 도올은 목소리는 물론, 강의라는 ‘퍼포먼스’ 자체가 썩 괜찮은 ‘상품성’을 지녔다는 얘기가 된다. 노자 강의 이후 아직까지 끊이지 않는 ‘도올〓천재 엔터테이너’론은 한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부분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셈이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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