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 「영화속의 열린세상」/환상을 훔쳐보기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영화속의 열린세상」송희복 지음 문학과 지성사 255쪽 5,000원 ■

`영화는 잘 만들어진 헛것이다. 영화는 환(幻)을 좇는 문화양식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환 환각 환영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욕망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극적(劇的) 환상에 지나치게 몰입해 현실을 잃어버리게 되면 욕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환상과 현실 사이, 거기에서 영화의 본질과 영화읽기의 출발점을 찾아낸 책이다.

경남 진주교육대교수(국문학)인 저자는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 그는 이 책에서 영화, 영화보기의 속성을 ‘훔쳐보기’로 정의하고 그것을 통해 섹스 불륜 동성애 인종주의 등 주제별로 영화에 접근해간다. 문학평론가답게 문학과 영화를 넘나들며 영화의 사회문화적 의미,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낸다. ‘영화는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고 답이다. 결국 삶에 대한 물음이고 그래서 철학적이기도 하다. 영화 밖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런 점에서 한편 한편의 영화평에 치우쳤던 기존의 책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훔쳐보기란 과연 무엇인가. 훔쳐본다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미지의 세계나 극적 환상의 세계로 빨려드는 것이다. 영화보기는 그 환상을 훔쳐보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상에만 갇혀버릴 경우 그 훔쳐보기는 비극적이다. 오셀로역을맡은한 연극배우가 극적 환상에 몰입하면서 실제로 한 여자를 목졸라 죽인다는 내용의 영화 ‘이중인생’이 이를 잘 보여준다. ‘패왕별희’도 마찬가지. 모두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훔쳐보기의 비극을 다룬 영화다. 하지만 이 훔쳐보기의 비극이야말로 삶의 한 단면이자 영화읽기의 매력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원초적 본능’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심문을 받는 샤론 스톤. 그 관능적 포즈는 샤론 스톤을 훔쳐보는 전세계 뭇 남정네들의 시선을 반영한다. 훔쳐보기는 곧 남성중심적 관음(觀淫)주의다. 그렇기에 영화는 에로티시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데미지’ ‘북회귀선’처럼 불륜 레즈비어니즘(여성 동성애)을 다룬 영화의 경우 남성들의 훔쳐보기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여고괴담’ ‘퇴마록’ 등 우리의 괴담 판타지영화도 훔쳐보기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영화를 통한 훔쳐보기가 지나친 에로티시즘이나 환상에 경도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 감추어진 환상과 현실, 그 긴장을 잘 읽어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책의 아쉬움이 있다면 끝부분 동아시아영화를 다룬 내용이 훔쳐보기라는 접근방식과 거리가 있고 단편적인 평론에 그쳤다는 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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