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흐린날에…」조기종영 작가 김운경씨

  • 입력 1999년 2월 4일 19시 28분


“빨리 끝내라는 통보를 받고 비극적인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직업에 대한 묘사 때문에 압력을 받은 적은 있지만 시청률 ‘외압’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가 이럴바에야 다른 작가는 어떻겠습니까”

SBS ‘흐린 날에 쓴 편지’(주말 밤8·55)의 작가 김운경씨(47)는 시청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방송 풍토가 존재하는 한 좋은 드라마가 나올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초 60회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시청률의 덫에 걸려 7일 30회를 끝으로 조기종영된다. 지난 주말 각각 14.8%와 11%를 기록했고 방영기간중 한차례도 20%를 넘지 못한 것.

그는 “나머지 30회분 계약금을 돌려주고 SBS와는 다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며 “시청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결말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주말 방송되는 마지막 2회분에서 영두(김석훈 분)는 은영(박윤현)이 복지시설에 맡겼던 은영의 오빠를 집으로 데려온다. 영두와 은영은 결혼해 오빠를 돌보며 살 것을 약속하고 영범(김영철)은 대학에서 강의를 맡아 새 출발을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김운경은 80년대 초반부터 ‘서울뚝배기’ ‘형’ ‘서울의 달’ ‘옥이 이모’ ‘파랑새는 있다’ 등의 드라마를 통해 조역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드라마’로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온 방송가의 대표적 흥행작가로 꼽힌다. SBS가 자신있게 내세웠던 그가 ‘뜻밖의’ 실패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시청률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방송 환경이 일차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방송 초반 시청률 부진에 따른 방송사측 요구로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수없이 바뀌었다.

또 웃음 속에 은근한 풍자의 칼날을 담는 작가 특유의 입심이 약해진데다 자칭 야당투사 범구와 ‘젊은 오빠’ 진촌 등 핵심적인 배역에 대한 부적절한 캐스팅도 부진의 원인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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